낯선 환경을 건너는 지혜 낯선 환경에 노출될 때 긴장될 때가 있지요. 그곳이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어서 주변을 살피고 평소에 하지 않던 불편한 자세를 취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긴장이 풀리고 편안한 마음이 올라올 때쯤, 미소가 새어 나오죠. 저 역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면 긴장이 되고 눈치를 보게 됩니다. 평소에는 느긋했던 행동과 말이 빨라지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런 행동이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한 나의 사회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럴 때 마음이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느긋하게 행동할 때면 주변에서는 기분이 안 좋냐고 물어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지금 느끼는 감정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모습도 ‘나’입니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그렇지 않으며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다릅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지금까지 내가 변해 온 과정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수많은 변화의 순간들 사이로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바로 '지혜'였습니다. 눈을 다시 떠서 그 단어의 의미를 가만히 짚어보았습니다. 사전에서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냉장고 속 사랑 사랑한다는 일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요, ‘어른들은 몰라요’를 알고 계시는지요? 오늘따라 그 노래 가사가 마음에 오랫동안 머뭅니다.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제가 어릴 적에도 어른들이 저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즐겨 불렀던 노래로 기억합니다. 시간이 흘러 딸이 말을 배우던 무렵,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어른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라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아직 말도 서툰 아이가 어린이날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상황에 딱 맞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아이만의 감정이 아닙니다.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마음속에도 외로움이 숨어 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결혼 전과는 다른 책임감으로 삶의 무게가 늘어납니다. 그 무게를 견디
좋은 여행에는 빈칸이 필요하다 여행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도를 펼치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식당과 카페를 저장하고, 놓치면 아쉽다는 명소와 반드시 봐야 한다는 풍경을 표시한다. 짧은 일정 안에서 동선을 맞추다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획은 금세 촘촘해진다. 낯선 도시를 향한 설렘은 어느새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의 목록으로 바뀐다. 한때 여행의 어려움은 정보가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어디에 가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라 현지에 도착한 뒤에야 지도를 구하고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지금은 그 반대다. 검색창을 열면 수많은 추천이 쏟아지고, 누군가의 여행 일정과 식당 목록을 그대로 내려받을 수도 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쉬워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안이 커진다. 내가 고른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것 같고, 어렵게 떠난 여행에서 한 끼라도 실패하면 손해를 본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에서도 실패하지 않으려 한다. 평점이 높은 식당을 고르고, 가장 아름답게 사진이 나온다는 시간에 맞춰 명소를 찾는다. 유명한 메뉴를 주문하고 사람들이 감탄했다는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충분히 조사한 덕분에 큰 실패는 피할 수 있지만, 여행
한걸음의 시작 글을 쓰기 전 마음이 복잡한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이유 없이 뒹굴며 휴식을 취합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는, 머릿속이 복잡한 날 술통에 빠져서 만취가 된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침묵의 상태로 어떠한 간섭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에게 “왜 힘든 일 있어?”라고 안부를 물어본다면 ‘그냥 생각 없이 뒹굴뒹굴할 때의 편안함의 행복한 순간이 좋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 속 뒹굴다가 졸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나를 찾는 이가 없다면 온종일을 그렇게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시간이 처음에는 고립된 것처럼 외롭고 불안했지만,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합니다. 고요한 집 흘러가는 시간 속 자유롭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나, 당당하고 멋지게 일해내고 있는 독립적인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흘러가면 좋겠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말이지요. 돌아보면 지금의 뒹굴뒹굴함도 그 ‘한 걸음’의 일부일지 모릅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노자- 그러고 보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첫걸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흥이 없다는 감각도 취향이다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종종 정답이 먼저 도착한다. 누군가 잔에 코를 가까이 대고 복숭아와 흰 꽃, 젖은 돌의 향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다시 향을 맡아본다. 그러나 내게는 그가 말한 향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전혀 다른 향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것도 선명하게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가장 먼저 의심하는 것은 와인이 아니라 나의 감각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은 생각보다 꺼내기 어렵다. 다른 향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 와인을 오래 마신 사람의 확신에 찬 설명 앞에서 나의 감각은 금세 근거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가 복숭아라고 했으니 내가 맡은 자두는 틀린 것 같고, 모두가 복합적이라고 감탄하니 밋밋하다고 느낀 내 인상은 미숙한 감상이 된 듯하다. 결국 잔 속에서 무슨 향이 나는지를 살피기보다 남들이 말한 향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게 된다. 물론 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품종과 산지, 양조 방식에 관한 지식은 막연했던 감각에 이름을 붙여주고 이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차이를 발견하게 한다.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전문가의 안목 역시 존중할
사람이 자기 삶을 포기하는 순간 사람은 언제 무기력해질까. 많은 사람들은 일이 너무 많아서라고 말한다. 너무 바쁘고, 너무 피곤하고, 너무 오래 버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지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밤을 새우고, 아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꼭 지켜야 할 일이 있으면 몸이 무너져도 끝까지 버틴다. 인간은 피로보다 의미를 오래 견디는 존재다. 그런데도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몸이 움직이지 않고, 예전에는 즐거웠던 일도 귀찮아진다. 사람들은 그 상태를 무기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무기력을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기력은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 자리에서 조금씩 내려온 상태다.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천천히 바뀐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보다 많아지고, 선택하는 시간보다 맞춰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결정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움직이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하루를 채운다. 처음에는 그것도 내 선택이라고 믿는다
공간을 정리하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 최근 이사를 하면서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집이란 그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하루를 보내는 곳이라고만 여겼지요. 그런데 막상 새로운 집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삿짐 직원들이 돌아간 후, 한쪽 구석에 탑처럼 높이 쌓여있는 상자와 마구잡이로 수납장에 들여놓은 물건들은 헝클어진 내 일상처럼 뒤섞여 있었습니다. 내 삶은 분명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데 일상은 관성처럼 여전히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듯한 요즘입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루를 살았어도 저녁마다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나를 마주하곤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길을 벗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적지가 바뀌었는데도 그곳을 향해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지나온 길과 새로운 길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목표지점으로 가려면 그쪽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내 집처럼 복잡하고 어지럽기만 했습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곳부터 하나씩 정리하
다시 일어날 때 필요한 것은 의욕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너진 뒤 다시 일어서려면 마음부터 살아나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 의욕이 생겨야 하고, 다시 해보고 싶어져야 하고, 다시 좋아져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기다린다. 더 나아진 기분, 다시 생길 의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올 열정을. 그러나 실제 삶은 그 순서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것은 대개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생활의 복구다. 의욕이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일상의 틀이 먼저 제자리를 찾으면서 마음이 뒤따라온다. 무너진 사람은 흔히 자기 감정부터 의심한다. 예전처럼 하고 싶지 않고, 전처럼 빨리 움직여지지 않고, 아주 작은 일조차 버겁게 느껴지면 자신이 약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리듬이다. 한 번 무너진 뒤의 삶은 대개 마음보다 생활이 먼저 흐트러진다. 잠드는 시간이 뒤섞이고, 식사의 감각이 무뎌지고, 해야 할 일의 순서가 흐려지고, 하루가 하루를 밀어내는 식으로 지나간다. 이런 상태에서는 좋은 말도, 큰 결심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마음은 여전히 지쳐 있는데 생활의 바닥까지 꺼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은
오늘 이 순간을 느껴봅니다. 휴일의 이른 아침,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열었습니다. 비가 갠 뒤의 아침 공기가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상큼한 공기는 온몸을 짜릿하게 합니다. 이 소중한 순간을 오롯이 누리고 싶어 눈을 감고 깊게 숨 쉬어 봅니다. ‘참 좋다!’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맑은 공기로 씻겨지는 기분이 드니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나와 함께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먹이를 찾아 무리 지어 다니며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따스한 햇볕을 받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젖은 흙 내음과 그 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나무와 꽃들의 기지개 켜는 소리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런 생동감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뜨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다지 싫지만은 않습니다. 아침을 준비하며 이 어색한 기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달라진 건지 커피를 끓이고 과일을 깎으면서도 그 이유는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나는 그저 미소만 지은 채 그 누구도 떠올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예전이라면 이 행복감을
당신의 시선은 어디에 있나요.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려 할 때, 실제로는 그것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무소유 (법정 스님)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이것은 집착인가, 몰입인가, 혼돈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집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주도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다른 무언가에 시선이 넘어가 있는 것을 느낍니다. 집착은 대상에게 끌려다니는 상태, 몰입은 내가 그것에 주도적으로 깊이 빠져드는 상태입니다. 고민이 있을 때 생각의 고리가 집착으로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깊은 고민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럼, 왜 집착에 늪에 빠질까요?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불안정한 심리가 불안한 감정을 만들고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집착과 마주할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전환’입니다. 마음이 무거울 때 신체를 움직여 보는 것, 몸과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고 지금의 행복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행복은 완벽한 조건보다 삶을 바라보고 돌보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나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요.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떠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