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계획이 틀어져야 인생이 시작된다


살다 보면 늘 그렇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드물다. 일찍부터 세운 유학 계획이 막판 변수 하나에 무너지고, 승진은 코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며, 오래 준비한 시험은 예상치 못한 컨디션 난조로 실패한다. 오랜 시간 공들인 관계는 사소한 오해로 멀어지고, 가족처럼 지낸 이와도 이유 없이 어긋난다. 모든 것을 잘 관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계획이라는 직선을 빗겨가며 자신의 곡선을 그려간다. 그 곡선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그러나 조금 멀리서 보면 알게 된다. 계획이 어긋나는 건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장이 열리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은 편안할 수는 있지만 생생하지는 않다. 설계된 시나리오대로만 흘러가는 삶은 오히려 현실보다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살아 있다는 건 예측을 뛰어넘는 변수와 마주하는 일이다. 그 예측 불가능함 속에서 진짜 내 마음이 드러난다.

계획이 무너질 때 우리는 처음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내 안에 남은 가능성과 감정을 다시 만지작거리게 된다. 준비한 길이 끊어질 때, 우리는 뒤늦게 물어본다. “이게 정말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었나?” 의외의 질문이 삶의 본질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되돌아보면 어떤 실패는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끄는 경로가 된다. 차질처럼 보였던 일이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계획은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에 가깝다.

 

계획은 ‘길’이 아니다.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하나의 표식일 뿐이다. 정해진 계획대로만 가는 삶은 분명 단단해 보이지만, 그 길이 나에게 진정 필요한 길이었는지를 검증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계획이 틀어졌을 때야 비로소 삶의 진심이 드러난다.

예상과 어긋난 상황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다. 우리를 정직하게 만든다. 그제야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가? 그 선택 안에는 어떤 욕망이 있었는가? 지금도 여전히 그 방향이 유효한가? 멈춤과 틀어짐은 종종 가장 깊은 내면의 동기를 되짚는 계기가 된다.

 

문제는, 우리는 계획이 어긋난 상황을 종종 ‘나 자신이 틀어졌다’는 메시지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계획의 실패를 곧 내 실패로 받아들이며 자책하거나 조급해진다. 특히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계획을 지키는 것이 자존감의 핵심 구조가 되곤 한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느슨하며, 수많은 변수에 열려 있다. 그 세계 속에서 완벽한 계획이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강의 흐름을 예측하며 노를 젓는 사람일 뿐, 물줄기 자체를 설계할 수는 없다. 그렇게 보면 계획이란 물살 위에 띄운 임시 부표에 가깝다. 방향은 짐작할 수 있어도, 결코 그 방향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계획이 어긋났을 때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다.

나를 비난하지 않고, 멈춘 자리에서 다시 숨을 고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쯤에서 다시 물어보자. 내가 진짜 원했던 건 무엇이었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여도, 삶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우리는 종종 계획을 실행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계획을 점검하고 수정하는 데는 서툴다. 계획은 내 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재촉하고 몰아세우는 상사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삶의 목적을 다시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지키려는 건 나의 중심인가, 아니면 사회가 정해준 틀인가?

 

실제로 많은 전환점은 계획이 어긋난 후에야 찾아온다. 원하던 직장을 놓친 사람이 여행 중 전혀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건강이 나빠진 뒤에야 삶의 리듬을 재정비하는 이도 있다. 연애가 끝난 뒤에야 나를 위한 시간을 돌볼 수 있었고, 실패한 프로젝트 덕분에 오히려 더 나은 제안을 만난 경우도 있다.

틀어짐의 순간은 흔들림이 아니라 전환의 입구일 수 있다. 불안은 본능이지만, 해체 없이 재구성도 없다. 우리가 발 디딘 현실을 바꿔내는 힘은 항상 예기치 못한 균열에서 시작된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다시 다짐하고 계획을 세운다. 운동을 시작하고, 식습관을 바꾸고, 더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한다. 그러나 계획이 어긋나는 속도도 빠르다. 금세 흐트러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 흔들림이야말로 삶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계획대로만 살아가는 삶에는 우연도, 인연도, 계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는 계획에서 벗어난 바로 그 자리에 숨어 있다. 중요한 건 계획의 완성도가 아니라, 어긋났을 때의 나의 태도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계획 그 자체가 아니라 ‘방향’이다. 더 정확히는, 방향을 잃었을 때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다. 내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애썼는지를 돌아보는 것. 그 길 위에 남은 자취들을 긍정하는 것. 계획이 틀어졌을 때 그것을 실패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시 시작할 기회로 여기는 것. 그렇게 방향을 잃은 순간에도 나를 믿어주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짜 성숙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계획이 틀어졌다고 낙담하지 말자. 그 어긋남은 어쩌면 인생이 비로소 ‘나의 것’이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정한 트랙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스스로의 발걸음을 다시 그려보는 일.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새해의 시작일지 모른다.

예정된 삶이 아니라, 선택된 삶. 목표가 아닌 방향, 완성이 아닌 과정. 그 흐름 속에 우리가 진짜로 살아 있는 것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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