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준을 낮추는 용기 우리는 이상하게도, 스스로에게만큼은 늘 높은 기준을 들이댄다. 남에게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항상 더 잘해야 한다고 하고, 더 열심히 라라고 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을 놓지 못한다. 마치 조금만 느슨해져도 금방 무너져버릴 듯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정말 문제는 기준이 높은 게 아니라, 그 기준을 매일 지켜야 한다고 믿는 나의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기준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날을 용납하지 않는 마음이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삶이란 결국 ‘지속’이 만들어내는 힘인데, 우리는 그 지속보다 완벽함을 먼저 챙기려 한다. 그래서 조금만 흐트러져도, 잠깐 멈춰도,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실망한다. 그러다 지쳐버리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데도 말이다. 말 그대로,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이 오히려 삶의 지속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순간이 오는 것이다. 기준을 낮춘다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준을 조절하는 일은, 내가 삶을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마음의 숨구멍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내가
새롭게 보기를 연습합니다 퇴근 후 운동하러 갑니다. 제 앞에서 인도 쪽으로 큰 가지를 뻗은 단풍나무가 시선을 끕니다. 풍성한 단풍잎은 하나하나 자기만의 색을 뽐내며 눈부시게 일렁입니다. 하늘과 가까운 잎들은 진한 빨간색으로, 그 아래는 주황색으로, 기둥과 가까울수록 노란색으로, 색의 농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황홀한 그러데이션을 이루고 있는 단풍잎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 옆을 지나가다가 뒤돌아섭니다. 그러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붉디붉은 단풍 위로, 한 뼘쯤 되는 곳에 조금 볼록해진 반달이 낮게 떠 있습니다. 아직 어둠이 찾아오지 않아서인지 빛나기보다는 하얗고 조용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초승달을 본 게 얼마 전인데 벌써 저렇게 달이 차오르고 있네요. 최근에 저는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작은 기쁨을 찾고 오늘의 감사에 다가설 수 있는 ‘나 혼자 챌린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한순간만이라도 잠시 멈춰서서 새롭고 낯설게 세상을 보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방금 그런 순간을 만난 거지요. 황홀하면서도 경이로운 시간, 마치 제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형언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저는 챌린지에 성공했다며 옅은
공감 -어른이 되어 알게 된 무게- 길을 걸을 때 떨어진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낙엽 소리가 분주하고 서글프게만 느껴집니다. 내 마음이 무거워서일까요?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가족을 챙기며 먹고 살 경제력을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인지,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는 일도 얼마나 벅찬 일인지를요. 어렸을 때는 그저 당연한 일상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하루하루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들이 되었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잠드는 밤, 가족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식탁, 사랑하는 이들의 평온한 일상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왜 그토록 일찍 일어나셨는지, 당신의 것은 늘 미루시면서 삼 형제를 먼저 챙기셨는지,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밤들, 홀로 감당하셨을 걱정과 두려움들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상상해봅니다. 지금 곁에 부모님,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다면 어떠한 마음으로 나는 살고 있을까? 아무 말 없이 그냥 있어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처의 밀도 사람의 마음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안쪽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들, 오래된 기억들, 누구에게도 설명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얇고 촘촘한 층을 이루며 쌓여 있다. 상처는 그 층을 따라 남는다. 나는 이 결을 바라볼 때마다 상처는 크기가 아니라 밀도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사람들은 흔히 상처를 크기로 판단한다. 큰 사건은 큰 상처, 작은 일은 작은 상처.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금세 흘러가고 어떤 사람은 며칠을 머뭇거리다 밤새 뒤척인다. 같은 상황을 겪어도 한 사람은 지나가고 또 다른 사람은 삶 전체가 흔들린다. 이 차이는 사건의 강도가 아니라, 그 사람 마음 속에서 이미 쌓여 있던 감정의 축적량, 즉 그 사람만의 내적 밀도 때문이다. 어떤 말은 단순한 의견처럼 들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래 감추어온 두려움의 뿌리를 건드린다. 어떤 행동은 사소한 실수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버려짐의 감각’을 불러온다. 이럴 때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를 탓한다. “왜 나는 이런 일에 약할까.” “왜 이 정도로 흔들릴까.” 하지만 상처가 깊게 남는 이유는 그 사람이 약해서가
살아 계셔서 참 좋다 마른 나뭇가지의 끝이 햇빛에 반짝거리고, 두꺼운 외투를 꼭 여미지 않아도 되는 날씨입니다. 거의 반년 만에 후배를 만났습니다. 늘 밝고 활발한, 주변의 기운을 경쾌하게 바꿔 주는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그녀의 할머니는 98세인데 현재 요양원에 20여 년째 머물고 계십니다. 직접 모시는 것은 아니지만, 70대 노인인 아버지가 100세 가까운 할머니를 돌보는 게 짠해서 후배가 무심코 아버지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98세인데 너무 오래 사시는 거 아냐?” 아버지가 그러시더랍니다, “우리 엄만데 네가 왜 그러냐? 난 우리 엄마가 살아계셔서 좋은데….” 그 말을 전해 듣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순식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가더군요. 후배의 아버지로, 할머니로 저의 처지가 바뀌기도 했고요. 혹시라도 알게 모르게, 간호사인 제가 환자를 도구적‧기능적으로만 보고 많은 부분을 판단했던 건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봤습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이고 가족이고 친구가 되어,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을 텐데…. 그분이 가진 정서적 가치를 놓치고, 곁을 지키는 분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저 자신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후배의 일화가
불안은 왜 ‘미리 상처받기’로 나타날까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무너질 것만 같다. 메시지 하나가 늦게 오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 밀려오고, 별 말 아닌 장면에서도 예전의 상처가 갑자기 되살아난다. “아니야, 별일 아니야” 그렇게 다독여 보지만 몸 어딘가에서는 이미 오래된 불안이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불안은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현재의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잔상이 움직일 때. 우리는 미래가 두려운 것 같지만, 사실은 익숙한 상처가 다시 다가올까 봐 더 흔들린다. 불안이 향하는 방향은 언제나 앞으로가 아니라 뒤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던 장면, 그때 느꼈던 무력감,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나. 그 기억이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마치 알람처럼 불안을 울린다. 불안은 예감이 아니다. 과거가 다시 흔들릴지 모른다는 기억의 반응이다. “그때처럼 되면 어떡하지?” 이 문장이 불안의 중심에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임에도, 몸은 이미 ‘다시 아플 것’이라는 감각을 먼저 배운다. 문제는 이 감각이 어떤 논리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이성으로는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몸은 그
친구라는 거울 친정으로 내려가는 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제 올라가냐는 물음에 다음 날 간다고 하자 그녀는 자기에게 잠시 들렀다 가라고 합니다. “나 좀 만나러 와 줄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전화로는 힘들고, 전에 얘기했던 카페에도 같이 가자고 합니다. 강릉에 갈 때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저에게로 와 주었던 친구라 이번에는 제가 가기로 했습니다.2시간이 넘는 거리이고, 직접 운전해서 가는 건 처음이라 조금 일찍 출발했습니다. 말 그대로 청명한 가을 날씨입니다. 파랗고 높은 하늘은 투명한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구름은 흰 물감이 얇게 붓질 된 것처럼 느리게 퍼지며 흐릅니다. 한갓지지만 구불구불한 도로 앞으로는 산 능선이 계속 겹쳐지며 중첩되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새 능선이 나타납니다. 빨갛고 노랗게 변한 산들이 그려내는 능선이 마치 그림 같아서 가을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인제양양터널’을 지나고, 헤아릴 수 없이 또 다른 많은 터널을 지나 친구에게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집은 강변에 위치하고 건너편으로는 산들이 있어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하
[대한민국경제신문]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이 인구·지방 소멸과 정치양극화 등 대한민국이 처한 엄중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자 희망은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수도 지위와 역할에 걸맞은 행재정 특례와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세종시가 명실상부 진정한 행정수도로 거듭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최민호 시장은 3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년 한국지방자치학회 추계국제학술대회 ‘초광역권 발전전략과 행정수도 완성’에 참석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3일부터 4일까지 한국지방자치학회 주관으로 열려 국가소멸의 위기 속에서 행정수도 완성과 5극 3특 초광역권 발전 등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논의하고자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최민호 시장은 ‘행정수도 세종 완성, 미래 대한민국으로의 도약’이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으로, 행정수도 세종이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할 중요한 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저출생과 지역소멸, 정치 양극화 등 삼각파도의 난제에 갇혀있다”며 “‘행정수도 세종’은 수도권 일극체제를 해소하고 지방분권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구조적 대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종이 진정한 행정수도로 발돋움하려면 행정수도
[대한민국경제신문] 고양특례시는 올해 1~9월 출생아 수는 4,102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5.6% 늘어 저출생 극복의 청신호를 밝혔다. 시는 최근 출산율 반등을 구조적 효과로 만들기 위해 저출생 대비 공약 실천 계획을 기반으로 인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공감대를 넓혀 인구문제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등 사회적 환경 조성에 집중한다. 이동환 고양특례시장은 “급변하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 전반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며 “결혼과 출산, 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되고 건강한 노후가 보장되도록 모든 세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매년 인구정책 시행계획 수립·관리… 임신과 출산, 가족 지원 등 사회적 책임 강화 고양시는 정부가 수립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토대로 지역 특색을 반영한 맞춤형 인구정책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해 나가고 있다. 2025 고양시 인구정책 시행계획은 전 생애주기에 걸친 돌봄 서비스와 교육·훈련 등 삶의 기반 강화에 힘쓰고 있다.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 가능 고양’을 비전 삼아 28개 부서에서 총 133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저출생 대응과 관련해 ‘함께 일하고 함께
[대한민국경제신문] 인천 서구는 지난 7일 ㈜포스코인터내셔널로부터 다문화 가정 아동 언어발달을 위한 도서 및 도서기기를 전달받았다. 이날 행사는 인천 서구 봉화초등학교, 인천 서구 천마초등학교, 인천 서구 신현초등학교(교장 김정식), 인천 서구 초록몬테소리어린이집, 인천 서구 아이빌어린이집, 인천 서구 제나 어린이집 등 지역 교육기관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이번에 전달된 도서기기는 단순한 독서 보조도구가 아닌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사회적기업인 알로하아이디어스가 함께하여 포스코 임직원들이 직접 성우 교육을 받고 책 내용을 녹음한 ‘목소리 도서기기’로 제작되어 더욱 뜻깊다. 포스코 관계자는 “아이들이 책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라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나눔을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를 함께한 각 교육기관 관계자들도 “다문화 가정 아동들을 위한 세심한 지원에 감사드린다”라며 “아이들이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라고 전했다. 강범석 서구청장은 “포스코 임직원들의 정성과 사회적기업의 협력이 더해져 아이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라며 “지역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