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주의 행복한 이별

봄이 오면, 비워야 할 것들


이른 아침, 가끔 손끝은 시렵지만, 이제는 봄이 온 게 피부로 느껴집니다. 앙상하고 건조했던 가로수에 물기가 오르고, 연한 나뭇가지가 나날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그 가지에 맺힌 작은 봉오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숫자도 늘고 있습니다. 거리 화단의 마른 풀숲에는 삐죽삐죽한 연초록 싹들이 수줍게 모습을 숨기고도 있습니다. 숨기듯, 그러면서도 숨기지 못하듯.

 

며칠 전, 버스 정거장에 서 있는데 어둡고 두꺼운 옷차림의 사람들 사이에서 봄 햇살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짧은 연분홍 재킷에 하늘하늘한 베이지색 스커트를 입은 모습이 봄의 현신처럼 여겨지더군요. 그러자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봄 날씨 때문에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울옷을 정리하고 봄옷을 꺼내려면 정리정돈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청소가 필요합니다. 속히 날이 풀려,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싶습니다. 집 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겨우내 고여있던 묵은 기운을 내보내고 새봄을 맞이하도록 말이죠. 봄이 가져다주는 환하고 생기 넘치는 기운이 집 안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스며들기를 기원하는 청소가 될 거 같지 않나요?

 

집안을 대충 둘러보며 미리 청소 계획을 세워봅니다. 그런데 버리고 비워야 할 것만 잔뜩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저의 욕심이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민망한 나의 물욕을 대면하는 듯합니다. 장 가득, 서랍 가득한 물건들을 보며 나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이게 필요한가?

너무 많이 가진 것은 아닌가?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것 때문에 내가 지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

 

작은 집안에 잡동사니가 많다는 것은 치러야 할 댓가도 많은 거 같습니다. 흐트러지면 제 자리를 찾아줘야 하고, 그 자리에는 이상하게 먼지도 잘 쌓입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먼지를 닦아줘야 합니다. 그렇게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이 때로는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자꾸 비슷비슷한 물건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혹시 허허로운 마음을 소비로 달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한때는 가방 하나에 모든 짐을 담을 수 있는 가벼운 삶을 꿈꿨습니다. 가족이 생기고 짐이 는 만큼 삶도 그에 비례해서 무거워진 듯합니다. 조만간 봄맞이 대청소를 통해 물건뿐 아니라 욕심도 비우고 덜어내야겠습니다. 그러면 저의 삶도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면, 물건은 공간만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자리도 조금씩 가져갑니다. 쓰지 않으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대부분 미련이거나 막연한 불안일 수 있으며, '언젠가'라는 이름의 핑계일 때도 있습니다.

 

봄맞이 대청소는 그런 것들과 작별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봄은 해마다 이렇게 옵니다. 묵은 것을 밀어내고, 새것을 위한 자리를 만들면서. 계절이 철마다 일을 말없이 해내듯, 나도 올봄에는 조금 더 가볍게 살아보려 합니다.

 

비우는 것이 잃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는 일임을 기억하면서 말이지요.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