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가 되지 않는 법 사람의 본심은 호의를 받을 때보다 그 호의가 중단되었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늘 부탁을 들어주던 사람이 한 번 거절했을 때, 언제나 계산하던 사람이 각자 부담하자고 했을 때, 묵묵히 책임지던 사람이 더는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상대가 보이는 반응이 있다. “왜 갑자기 그래?”라는 질문이다. 갑자기 달라진 것은 없다. 한 사람이 뒤늦게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양보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것이 변화로 보인다. 그동안 누려온 편의를 관계의 질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호의는 오래 반복되면 고마움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제공되어야 할 몫으로 오해받는다. 우리는 손해를 보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흔히 ‘호구’라고 부른다. 사람을 보는 눈이 없거나 지나치게 순진해서 이용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는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부탁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것도, 상대가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다는 것도, 이번에도 자신이 양보하게 되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손해보다 갈등이다. 거절한 뒤 생길 어색함, 상대의 실망한 표정, 관계가 멀어질 가능성을
자랑은 차라리 솔직하다 나는 대놓고 자랑하는 사람을 전혀 싫어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생겼으면 자랑할 수도 있다. 자식이 잘됐으면 말하고 싶고, 어려운 일을 해냈으면 알아주었으면 하고, 좋은 것을 갖게 됐으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친구가 “나 이번에는 좀 자랑해야겠다”며 신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오히려 편하다. 축하할 일이면 마음껏 축하해주면 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뭐 그리 흉한가. 나 역시 그렇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른 종류의 자랑이다. 자랑할 것은 빠짐없이 알리면서 자신은 그런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함께 알리고 싶어 하는 경우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했는지는 대화 속에 차곡차곡 들어가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직접 말하지 않고 흘린다. 별것 아니라며 이야기하고, 우연히 나온 이야기처럼 덧붙이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붙인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대화가 끝나고 나면 그 사람이 감추고 싶어 했다는 것들을 거의 다 알게 된다. 그래서 은근한 자랑은
마음에 오래 머무는 사람 창문 밖 매미 소리가 윙윙 크게 울리다가 조용해집니다. ‘매미야 안 울고 뭐 하니’하고 궁금해질 때쯤 매미가 다시 울기 시작하면 마음이 놓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마음으로 살다‘잘살고 있나’소식이 궁금할 때 상대방이 건네는 안부 인사 또한 아주 반갑게 와닿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메시지가 수신되었습니다. 몇 년 전, 명상센터를 처음 방문해 어리둥절해 있던,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선생님께서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 명상하던 제 모습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보냈다는 이야기, 지금은 자기 삶을 살고 있다며 웃음 짓던 모습, 그리고 저를 ‘예쁜 유미씨’라고 불러 주시던 다정한 목소리까지, 그 따뜻함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어릴 적 운동도 잘하시고 공부도 잘하셨다고 하시며 아이들을 키우실 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 애쓰셨다는 경험담도 들려주셨습니다. 언제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마음을 내어주시던 그 시간은 ‘좋은 어른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깨닫게 해주는 듯했습니다. “유미씨, 지난 힘든 일이 있다면 명상으로 다 비워보세요. 비우고 나면 마음
사과에도 수준이 있다 살다 보면 “미안해”라는 말을 꽤 많이 주고받는다. 약속에 늦어서 미안하고, 연락을 못 해서 미안하고, 깜빡해서 미안하다. 조금 더 큰 잘못을 하고 나면 미안하다는 말 앞뒤로 설명이 길어진다. 그날 내가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든지,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과의 길이와 진심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는 짧아도 마음에 남는데, 어떤 사람의 긴 사과를 듣고 나면 전보다 더 화가 난다. 한참 듣다 보면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얼핏 들으면 사과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하다. 내가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없고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는 사실만 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도 자주 따라온다. 물론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악의를 품고 살아가지 않는다. 문제의 대부분은 악의보다 무심함에서 생긴다. 그런데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이 벌어진 일까지 없애주지는 않는다. 발을 밟고서 일부러 밟은 게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아픈 발은 그대로다.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마음 건강하게 살아가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평생을 돌봐왔고, 앞으로도 계속 돌봄이 필요할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우연히 화면 속에서 그들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처음에 그는 치료를 거부했고, 자신이 떠난 뒤 홀로 남게 될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전국의 천 곳이 넘는 시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중증 장애를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아들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한 그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발 저에게 6개월만 더 살게 해주세요.”그리고 그는 절망 속에서 부모 없이도 발달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 마을, ‘네버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현재 ‘안녕, 피터팬’의 인세와 후원금을 종잣돈으로 피터팬 재단 설립을 준비하며 네버랜드 건설을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전경철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더 힘들
좋은 사람이 되는 데도 비용이 든다 좋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가만히 계산해보면 그렇다. 결혼한다는 소식에는 축의금을 챙기고, 상을 당했다는 연락에는 부의금을 준비한다. 생일이면 작은 선물이라도 고르고, 입학이나 졸업, 승진처럼 기쁜 일이 생기면 빈말로 축하하고 지나가기가 어렵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싶고, 기분이 가라앉은 친구에게는 맛있는 것을 먹이거나 바람이라도 쐬게 해주고 싶어진다.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든 갚아야 마음이 편하고,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미안해”라는 말만 던져놓고 끝내기도 영 개운하지 않다. 밥을 사든 작은 선물을 건네든, 말 뒤에 무언가를 하나 더 얹어야 비로소 마음을 다한 것 같다. 돈만 드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누가 언제 아팠는지, 누구의 아이가 시험을 보는지, 어느 집에 좋은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시간도 써야 한다. 전화 한 통이면 될 일을 굳이 찾아가기도 하고, 바쁜 날에도 잠깐 얼굴을 비추고, 선물을 하나 사더라도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고른다. 택배 하나를 보내는 데도 주소를 묻고 주문하고 메시지를 적는 수고가
슬픔도 저마다의 얼굴이 있다. 마음이 슬플 때면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려야만 솔직한 감정일까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분이 부모님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들을 때와 이야기할 때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입꼬리가 인위적으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한 분이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유미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그리고 이야기하다가 눈물을 보이는 분에게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표현의 방식은 다 다릅니다. 저의 감정은 그렇게 표현되었어요. 그리고 다른 이의 눈을 의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감정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 온도 차이를 느끼는 단계와 시점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일에 너무 지쳐서 무표정할 수도 있고 폭우처럼 눈물이 쏟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깊은 슬픔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과 그 순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나올 테니까요. 그 순간에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과 표현의 방식에 관해서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대와 자신을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
입맛은 돌아갈 곳을 기억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가장 먼저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른다. 현지에서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었어도 생각나는 것은 대개 화려한 요리가 아니라 오래 먹어온 한 끼다. 홍콩에서 스테이크와 딤섬, 구운 거위까지 낯선 도시의 맛을 부지런히 경험하고 돌아왔지만 비행기가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습관처럼 찾아가는 식당의, 여러 번 먹어 맛을 훤히 알고 있는 바로 그 김치찌개였다. 익숙한 식당에 들어서자 메뉴를 오래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냄비 안에서 푹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가 함께 끓고, 붉은 국물이 보글거리며 올라왔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자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이 그제야 몸으로 느껴졌다. 특별한 조리법을 발견한 것도, 처음 만나는 맛에 감탄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수없이 먹어온 맛인데도 낯선 곳을 다녀온 뒤 만난 그 익숙함은 새삼스럽게 따뜻했다. 이것은 여행지의 음식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맛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재료와 조리법을 만나고, 한 도시가 무엇을 먹으며 살아왔는지를 알아가는 일은 풍경을 보는 것만큼 흥미롭다. 때로는 한 접시의 음식이 유명한
낯선 환경을 건너는 지혜 낯선 환경에 노출될 때 긴장될 때가 있지요. 그곳이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어서 주변을 살피고 평소에 하지 않던 불편한 자세를 취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긴장이 풀리고 편안한 마음이 올라올 때쯤, 미소가 새어 나오죠. 저 역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면 긴장이 되고 눈치를 보게 됩니다. 평소에는 느긋했던 행동과 말이 빨라지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런 행동이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한 나의 사회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럴 때 마음이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느긋하게 행동할 때면 주변에서는 기분이 안 좋냐고 물어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지금 느끼는 감정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모습도 ‘나’입니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그렇지 않으며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다릅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지금까지 내가 변해 온 과정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수많은 변화의 순간들 사이로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바로 '지혜'였습니다. 눈을 다시 떠서 그 단어의 의미를 가만히 짚어보았습니다. 사전에서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냉장고 속 사랑 사랑한다는 일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요, ‘어른들은 몰라요’를 알고 계시는지요? 오늘따라 그 노래 가사가 마음에 오랫동안 머뭅니다.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제가 어릴 적에도 어른들이 저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즐겨 불렀던 노래로 기억합니다. 시간이 흘러 딸이 말을 배우던 무렵,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어른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라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아직 말도 서툰 아이가 어린이날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상황에 딱 맞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아이만의 감정이 아닙니다.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마음속에도 외로움이 숨어 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결혼 전과는 다른 책임감으로 삶의 무게가 늘어납니다. 그 무게를 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