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걷는다는 것 오래 사귀어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없고, 멀리 가보지 않으면 말의 힘을 알 수 없다. - 명심보감 - 며칠 전 악몽을 꿨습니다. 꿈속 낯선 장소에서 헤매고 있는 나, 그곳은 외국 사람들이 해수욕장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언어도 안되고 길도 모르는 해외 길, 목적지를 찾아가야 하는 현실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꿈에서 깼을 때 아직도 독립적이지 못한 나를 깨달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처음 경험해보는 일은 설레기도 하지만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찹니다. 그럴 때 “내가 너를 도와줄게”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독립과 의존 사이에서 흔들릴 때 강해지고 싶으면서도 가끔은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산책으로 우거진 나무들을 보며 마음을 달래보지만 걷다가 앉고, 라디오를 듣다 생각에 잠겼다가를 반복하게 됩니다. 독립의 길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선택들과 마주합니다. 산책하며 듣고 있는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유명연예인의 결혼을 앞두고 현실 조언이 이어졌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나는 다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사건 발생 시 ‘자체 조사’라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곤 한다. 사내 인사팀이 직접 조사하는 방식은 신속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건을 키우는 화근이 되기도 한다. 내부 조사가 공정하지 않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갈등은 조직 내부를 넘어 노동청 진정과 법적 소송이라는 2차 전장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제 직장 내 괴롭힘 조사는 단순한 사내 절차를 넘어, 기업의 평판과 경영권을 방어하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 영역이 되었다. 왜 지금 외부 전문가 투입이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선택이 되었는지 3가지 이유를 짚어본다. 첫째,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여 갈등의 외부 유출을 차단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장 먼저 갖는 불신은 “회사가 가해자를 감싸거나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이다. 내부 인사 담당자가 조사를 주도하면 그 과정이 아무리 공정해도 당사자들은 회사의 편향성을 의심하게 된다. 반면, 노무법인과 같은 제3의 전문 기관이 투입되면 조사 과정 자체에 중립성이 부여된다. 이는 피해자로 하여금 조직이 문제를 은폐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신뢰를
향기 따라 걷는 길 길을 걷는데, 코끝에 머무는 향긋한 내음이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하얀 꽃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아까시나무를 두리번거리며 찾아봅니다. 하지만 모습을 꼭꼭 숨긴 채, 그저 달콤한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뿐입니다. 이렇게 향이 짙은 것을 보면 가까이 있을 거 같은데 제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길 건너편 성당 담벼락 위로 시선이 머뭅니다. 담장을 따라 초록 잎을 잔뜩 두르고 올라온 덩굴장미가 이른 꽃을 몇 송이 피우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눈부시게 붉고 수줍은 모습이 심장에 가 닿았는지 마음 깊은 곳이 찌릿찌릿해 옵니다. 이렇게 선물처럼 기분 좋은 날, 저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바로 봉사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죠. 오늘은 무료급식소 자원봉사가 있는 날입니다. 시작한 지 어느새 3년이 넘었네요. 겨우 스무 살이던 작은아들을 군대 보낸 후 마음이 울적하고 헛헛해서 하게 된 일입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훈련소 문 앞에 그냥 떨구고 돌아서던 날이었어요. 멈추지 않는 눈물에 가슴속이 끊임없이 일렁거려, 마음에 무게중심이 되어줄 추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찾게 된 봉사활동이었습니
예쁜 사람은 왜 자꾸 비슷한 얼굴을 갖게 될까 젊을 때의 예쁨은 대개 얼굴에서 시작된다. 또렷한 이목구비, 좋은 피부, 세련된 옷차림, 눈길을 끄는 분위기.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타고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사람을 보다 보면 묘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쁜 사람’의 얼굴은 점점 비슷해진다. 꼭 생김새가 닮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얼굴은 제각각인데, 이상하게도 어떤 종류의 표정과 말투와 태도를 가진 사람들만이 끝내 예뻐 보인다. 왜 그럴까. 사람이 결국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얼굴의 조형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정리되어 있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정확하게 타인의 내면을 읽는다. 말하기 전의 망설임, 남을 보는 눈빛, 서운함을 처리하는 방식, 기분이 나쁠 때 얼굴에 남는 결까지. 이런 것들은 처음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인상을 다시 쓴다. 그래서 어떤 얼굴은 처음보다 빨리 닳고, 어떤 얼굴은 오래 볼수록 천천히 살아난다. 예쁨은 단순히 보기 좋은 상태가 아니다. 더 정확히는, 자기 안이 얼마나 정리되어 있는가가 얼굴 위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질투가 많은 사람은 얼굴
나다움, 스스로를 지키는 힘 인생 최고의 특권은 진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칼융- 살면서 누구나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만히 일상을 떠올려보면 의무적인 일에만 집중되어 있을 때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때 마음이 어떠한가를 느껴봅니다. 어릴 적 부모님은 365일 쉬는 날 없이 일하셨습니다. 함께 여행을 간 기억은 없지만, 가족들과 외식할 때, 생일날 케이크 앞에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불렀던 기억은 늘 행복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그 시간은 행복을 일깨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영구와 땡칠이’영화를 보러 가던 길, 형제들과 간식을 먹으며 신나던 날이었지만 아버지의 하얀 구두가 더 생각납니다. 생전 흰 티셔츠, 검은 바지, 흰 모자를 즐겨 입으시던 모습은 여전히 선합니다. 겨울이 되면 춥다며 따뜻한 옷을 사러 매장을 둘러보시던 어머니, 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 뒤를 놓칠까 봐 형제들끼리 손을 꼭 잡고 따라다니던 즐거운 모습도 스쳐 지나갑니다. 함께일 때 더 행복했던 기억, 혼자 남겨진 시간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 속에 있어야 기분이 좋은 것 같았고 홀로 있을 땐 무기력함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더
무너진 건 기대인데, 멈춰버린 건 나였다 무기력은 늘 게으름으로 오해된다. 해야 할 일은 남아 있고, 시간도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먼저 자신을 의심한다. 나태해진 건 아닐까,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닐까,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기대가 무너진 뒤 찾아오는 무기력은 그런 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의지의 실패라기보다, 한동안 앞으로 가던 마음이 갑자기 갈 곳을 잃은 상태에 가깝다. 사람은 기대할 때 현재만 살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살아본다. 잘될 거라는 믿음, 달라질 거라는 전망,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가정 속에서 마음은 이미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기대가 무너질 때 사라지는 것은 결과 하나만이 아니다. 그 결과를 중심으로 미리 짜여 있던 내면의 시간, 이미 먼저 가 있던 감정, 조용히 붙들고 있던 방향감각이 함께 무너진다. 상실은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정작 안에서는 오래 붙잡고 있던 하나의 시간이 통째로 꺼져버린 상태다. 그래서 기대가 무너진 사람에게 먼저 오는 것은 슬픔이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멈춤이다. 울고불고 무너지는 것보다 더 먼저
감사라는 작은 습관 어스름한 남청색 하늘에 거룻배 같은 초승달이 낮게 떠 있습니다. 작고 얇은 달은 주백색 조명처럼 은은하게 빛나며 내리는 어둠과 함께 흔들립니다. 모양이 변한 달을 보니 성큼 흘러가 버린 시간이 실감 나네요. 그리고 몸처럼 마음도 함께 나이 들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마음의 회복탄력성이 예전 같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에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몸에 탈이 나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이미 그 전부터 저의 마음은 계속 어수선했고, 마치 뜬풀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고 있는 역할들이 어느 순간 버거워졌고, 그 때문인지 불편한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지 알지 못한 채 화가 났습니다. 나중에는 이 모든 걸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초조해지기도 했고요. 지금 제가 하는 일들이 맞는 건지 확신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전에도 이와 같은 위기와 갈등은 몇 번 있었어요. 그때는 별로 힘들다는 생각 없이, 비교적 과부하를 잘 극복하고 해결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온 거죠. 그런데 이번에는 이 엉킨 실의 시작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풀 엄두조차 내지 않고 있는 거죠
최근 고용노동부의 특별 근로감독 강화와 판례의 엄격해진 잣대로 인해 소위 ‘공짜 야근’의 대명사로 불리던 포괄임금제가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 포괄임금제란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을 실제 시간과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금액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법원 판례상의 관행인 만큼, 최근 정부의 정책 기조는 '근로시간을 기록하지 않는 관행'과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이제 경영자들은 단순히 편의성을 위해 유지해 온 이 제도가 우리 회사의 경영권을 흔들 시한폭탄이 되지는 않을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현행 판례가 인정하는 포괄임금제의 핵심 요건은 ‘근로시간 산정의 곤란성’이다. 즉, 업무 특성상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하기가 객관적으로 어려운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출퇴근 기록이 명확해진 오늘날, 사무직이나 일반 제조업 현장에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는 주장은 더 이상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추세다. 만약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데도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면, 그 계약은 원칙적으로 무효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급여 명세서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영진이 가장 먼저 확인
잊기 위해 우리는 왜 흔적부터 지울까 이별하면 사람보다 먼저 번호를 지운다. 잊기 위해서라기보다, 닿고 싶은 마음을 막기 위해서다. 사진을 숨기고, 채팅방을 나가고, SNS를 끊고, 선물 받은 물건을 서랍 깊숙이 밀어 넣는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정리’라고 부르지만, 실은 그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다. 그것은 차단이다.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 한 번쯤은 더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 혹시라도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차단하는 일. 이별은 감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끝난 뒤부터 시작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닿아 있던 삶의 습관을 하나씩 끊어내는 일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잊지 않는다.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깊이만이 아니다.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던 일상의 반복이 더 오래 남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확인하던 메시지, 무심코 공유하던 사진, 약속처럼 이어지던 통화, 어떤 일을 겪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던 이름. 이별 이후에 무너지는 것은 감정보다 먼저 리듬이다. 나는 예전처럼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 하루의 특정한 순간마다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랑은 마음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생
욕망을 다루는 어른의 태도 사람은 큰 시련보다 작은 충동 앞에서 더 자주 흔들린다. 놀고 싶은데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순간, 먼저 연락하고 싶은데 상대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 하나만 먹고 끝내야 하는데 자꾸 손이 가는 순간, 다 말해버리고 싶은데 끝내 삼켜야 하는 순간. 삶은 대체로 이런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단한 결심보다 사소한 유혹이 더 자주 사람을 무너뜨리고, 거창한 위기보다 즉각적인 욕망이 더 쉽게 일상을 흔든다. 그래서 어떤 삶을 사는지는 결국 ‘무엇을 원하느냐’보다 ‘원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갈리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욕망을 부정적으로 배운다. 참아야 하는 것, 눌러야 하는 것,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어릴 때부터 “하고 싶다고 다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하고 싶은 대로만 사는 삶은 쉽게 무너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욕망을 다루는 법이 아니라 억누르는 법만 배운다. 그러다 보니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참았던 식욕은 폭식으로, 눌러둔 분노는 엉뚱한 대상에게 향하는 짜증으로, 미뤄둔 외로움은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돌아온다. 욕망은 없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