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새로운 사람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수많은 관계들이 동시에 시작된다. 새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 새 학년에 올라간 아이들, 새로운 부서로 발령받은 직장인들, 처음 만나는 프로젝트 팀, 취미를 함께할 모임, 혹은 아직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단톡방.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했던 나의 태도를 다시 점검하게 된다. 그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고,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할까. 이상하게도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과 동시에 불안을 동반한다. 괜히 어색해지고, 말수가 줄고, 본래보다 조심스러운 사람이 된다. 새로운 관계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조정하려 애쓴다.

 

그 조정은 때때로 진짜 나를 감추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밝고 친절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애쓰다가도, 돌아와선 진이 빠진다. 어색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유머를 섞지만, 그 웃음 뒤로는 어색한 긴장이 남는다. 관계가 시작되는 그 찰나, 우리는 ‘보여주기’와 ‘숨기기’ 사이 어딘가에서 늘 스스로를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자주 빠지는 착각은, ‘좋은 사람처럼 보여야 관계가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진짜 관계는 언제나 ‘좋은 인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나’에서 시작된다.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시작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층적이다. 처음 마주한 인연에게 내가 가진 면모를 단정하게 펼쳐 보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누구처럼 보이고 싶은가’보다 훨씬 중요한 건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감각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안정된 사람은 낯선 관계 앞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무엇을 드러낼지, 무엇을 아껴둘지, 무엇을 그냥 웃으며 넘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외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수록 ‘좋아 보이는 법칙’을 따라가려 한다. 첫인상은 그렇게 왜곡되고, 진짜 나와는 조금씩 멀어진다.

 

우리는 때로 너무 서두른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먼저 연락하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다가간다. 물론 그 다정함은 중요하지만, 관계에는 언제나 ‘속도’가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빠른 친밀함이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야 마음을 열 수 있다. ‘먼저 다가가는 사람’보다 중요한 건 ‘상대의 속도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기다릴 줄 아는 태도는 관계에서 가장 깊은 배려다.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천천히 접근하고, 공통된 맥락 위에서 자연스럽게 말문을 여는 일. 그것이 관계를 무르익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관계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내가 스스로 편안한 방식으로 말을 건네고, 너무 많이 설명하지 않으며, 상대에게 반응을 재촉하지 않는 사람. 나는 나를 숨기지 않되, 내 속도와 감정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 동시에, 상대방에게도 판단 대신 여유를 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관계의 준비가 된 사람’이다.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 중요한 건 누가 더 성격이 좋고, 말이 많고, 인싸인가가 아니라, 누가 더 건강한 거리감과 온도를 유지할 줄 아는가다.

 

진짜 인연은 잘 보이려 애쓴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인연이란 결국,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에서 조금씩 쌓여가는 신뢰다. 처음엔 잘 보이려고 웃었던 관계가, 나중엔 편해서 웃게 되는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중요한 건, 그 낯섦을 얼마나 무리 없이 감당하며 서로를 알아가느냐이다.

 

새해, 새로운 자리, 새로운 관계. 누군가 처음 나에게 인사를 건넬 것이다. 그 앞에서 완벽한 태도를 고민하기보다, 서두르지 않고 따뜻한 사람이 되자. ‘나답게 시작된 관계’만이 오래 버틸 수 있다. 그러니 좋은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지속 가능한 사람으로 관계를 시작하자. 좋은 인연은 그 진심을 알아보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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