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주의 행복한 이별

아버지와 이별 중입니다


조금 늦은 오후, 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 텅 빈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으로 메마른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이 외로이 서 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몇 개 남지 않은 마른 잎들이 금방 떨어질 것처럼 바람에 흔들립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자연장지입니다. 그곳에는 볕이 잘 들고 주변에 막힌 곳이 없어서 하늘이 가깝게 보이는 곳입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작은 묘지석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조화가 묘석을 두르고 있고 땅바닥에 꽂혀있기도 해서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꽃밭 같기도 합니다. 생명 없는 가짜 꽃이지만 그리움과 애달픔을 대신 품고 둘러서서 고인을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에 도착하자 연분홍색 노을은 조금씩 번지며 가만히 장지 위로 내려앉습니다. 점점 촘촘해지는 묘석 사이에서 아버지를 찾습니다. 갖다 놓은 지 얼마 안 된 가화(假花)의 색이 벌써 바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새 꽃을 가져와야 할 거 같습니다.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아버지에게 말을 겁니다. “아빠, 나 왔어. 여기 참 좋다. 볕도 잘 들고, 오늘은 예쁜 노을이 지네”

그때 어수선한 바람이 불어와 마른 낙엽을 놓고 가며, 종이컵에 놓인 막걸리 향내를 거두어 갑니다. 아버지에게 속닥속닥 말을 건네다가 눈물을 쏟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후에 이토록 그리움이 크고 깊을 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내게 다가올 죽음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떠날 수 있기에,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겨집니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경험을 통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삶을 재정립해 봅니다. 곁에 있을 때 마음껏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합니다. 오늘이 마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는 것처럼.

 

그런데 옆에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면 떠난 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상실감은 어쩌지 못하겠지만 죄책감은 덜 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떠나는 사람도 머무는 사람도, "참 좋았다. 지금까지 행복했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세상과 작별하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소란스러운 바람이 어스름을 몰고 옵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저의 삶을 이어가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바쁜 시간들 속에서 속절없이 다시 잊어버릴 수 있겠지만, 오늘 볕이 잘 든 아버지 묘석 위의 따스함을 가끔씩 떠올려 보렵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