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버지의 온기가 남아있습니다 약속이 있어 버스를 타러 걸어갑니다. 까슬한 가을바람에 마른 나뭇잎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지자 못 보던 작은 포장마차가 보입니다. 맛있는 냄새가 나를 유혹하고 김은 모락모락 흘러나옵니다. 슬쩍 들여다보니 잉어빵과 번데기가 사이좋게 놓여있습니다. 번데기는 재래시장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시내에서 파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또 한쪽에는 옥수수로 만든 술빵이 비닐에 덮여있습니다. 옅은 노란색에 콩이 듬성듬성 박히고 폭신폭신해 보이는 옥수수빵입니다. 이 빵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간식입니다. 갑자기 마주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재작년 말, 엄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친정을 자주 찾았던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요? 친정에 가면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옥수수빵을 사는 겁니다. 아버지가 드시기 편하도록 깍둑썰기를 해서 일부는 실온에 두어 편하게 드시게 하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드시는 것은 아니지만 간식으로, 때로는 식사 대신 드시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버지와
그날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조용하던 공간에 갑작스레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린 사람들이 목격한 건 부서진 의자와, 그 옆에 넘어져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이었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카페를 빠르게 나섰다. 커피잔은 아직 반 이상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는 창가 쪽이라 햇살이 잘 들었지만, 의자가 유난히 약해 보이는 탓에 많은 이들이 앉으려다 말곤 했다. 하필 거기에 앉은 그녀가 특별히 무리한 움직임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 상황은 오롯이 ‘운이 나빴다’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너진 의자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무너진 듯한 얼굴로 그 공간을 빠르게 벗어났다. 자신이 망가뜨렸다는 죄책감, 그리고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픔의 신호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부끄러움이 감각을 덮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안다. 넘어지고, 흘리고, 부서질 때, 가장 먼저 상처받는 건 자존감이다. 작은 사고일 뿐인데, 그 상황이 나라는 사람 자체를 정의하려는 듯 느껴지는 순간.
당신만의 애도방법은 무엇인가요? 해돋이를 보러 강릉 바닷가에 왔습니다. 모래사장 위에 놓인 데크에 앉아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립니다. 붉은 기운이 번지는 수평선에는 두툼한 구름 띠가 펼쳐져 있네요.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해가 아니라 구름 위로 돋는 해를 보게 될 거 같습니다. 어두운 바닷물은 하나의 몸처럼 덩어리져 넘실거리고, 쉼 없이 파도는 밀려오고 있습니다. 저와 마주하고 있는 바다 자체가 마치 거대한 생물처럼 느껴집니다. 아침 해는 어느덧 구름의 가장자리를 따라 빛으로 선을 그리며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일출을 기대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약속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믿음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에게 태양은 신이 되었나 봅니다. 절대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니까요. 궂은 날씨, 비록 해가 보이지 않는 날에도 늘 거기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구름 위로 점점 빛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제 눈이 시려서 해를 마주할 수 없습니다. 내 몸에 와 닿는 붉은 기운과 열기에 가만히 집중해봅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다 위에서 일렁거리는 해그림자만 눈으로 쫓습니다. 그것조차도 눈이 부시네요. 바다 위에서 굼실거리며 만들어지는 이랑마다 해
공감 –동기유발 당신이 두려워하는 일을 매일 하나씩 하라. 엘리너 루즈벨트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성적표를 나눠주실 때마다 담임 확인란에 항상 같은 말씀을 적어주셨습니다. 바로 '동기유발'이었습니다. 동기유발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한 원인이나 계기로 인해 어떤 일을 행동하게 되거나, 그러한 마음을 먹게 되는 내적 과정이라고 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동기유발'이라는 말은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더욱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가 어려운 나에게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서 머무는 일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졸업은 해야지. 대학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냈습니다.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버티자’라는 마음으로 살아 온 듯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욕구들을 억누르고, 호르몬 변화로 인한 심리적 갈등을 마주해야 하는 일들 앞에서 '버티기'는 때로 회피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동기유발'입니다. 오래 묵은 패턴의 아집과 되돌아가려는 미숙한 습관.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나에게,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만나봅니다.
사람이 힘이 된다는 건, 별게 아니야 누군가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는 이상하게 조급해진다. 뭔가 말해줘야 할것 같고, 도와줘야 할 것 같고, 최소한 위로가 되는 말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무얼 해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무력감에 휩싸인다. 그 감정이 어색함이 되고, 거리를 만들고, 결국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관계도 있다. 나는 그게 늘 아쉬웠다.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건, 꼭 해답을 주거나 조언을 해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조용히 옆에 있는 것,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것,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 그게 오히려 오래 남는다. 오래전 일이었다. 친구가 어떤 슬픔을 겪었고, 나는 며칠째 그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로가 될 말을 생각해두고 나서 연락해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건 핑계였다는 걸 알았다. 그 사이 친구는 나 없이도 하루를 잘 버텼고,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관계만 어색해졌다.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 하면서도, ‘힘이 된다는 건 뭔가 대단한 걸 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경험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