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면 지금부터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면 지금부터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코로나 시국에 처음 만들어진 ‘그믐’이라는 온라인 독서모임 공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 모임을 초창기에 가입했습니다. 비대면 독서모임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홍보에 혹한 측면이 더 큽니다. 한 달간 1권 읽는 모임에 참여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났습니다. 그저 메일로 발송되는 그믐의 소식지를 훑어보며 ‘요즘 이런 책들과 함께하고 있구나, 나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내년에는 직접 모임을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만 하던 중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에 그믐 대표가 출연했습니다. 그저 글로만 아는 분이지만 내적 친밀감으로 인해 반가웠어요. 하지만 동영상 썸네일의 제목은 저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뇌종양 판정받고 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면 뭘 하시겠습니까?’ 그분이 진단받은 ‘교모 세포종’은 예후가 좋지 않은 뇌종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 그녀는 마치 40배속의 삶을 사는 것 같다고 합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질문하고, 이에 대한
공감 –머무르기'와 '빠져들기'의 차이 마음 치유를 위해 여행을 떠나 본 적 있으신가요? 여행길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자연은 나에게 충고와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저 “안녕” “왔어” “잘 가”라고 반기며 인사를 하는 듯합니다. 명상을 공부할 때 일입니다. “마주하기 힘든 감정이 있을 때, 그 감정에 충분히 머무르고 빠져야만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명상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유미 선생님, 불편한 감정을 마주했을 때, 알아차린 후 머물러 보세요.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면 그대로 느껴봐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거지요. 충분히 머무는 것과 그 감정에 깊게 빠져드는 것은 다릅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불편한 감정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안으로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슬픔 그 자체가 되고, 불안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갇혀버렸습니다. 감정에 빠져드는 것이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머무르기'와 '빠져들기'의 차이. 그 미묘한 경계를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제 안의 오래된 패턴
지적은 왜 늘 못되게 들릴까 “그걸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런 걸 왜 몰라?” 지적은 언제나 옳은 말처럼 보인다. 말의 겉모습은 정당하고 논리적이며, 때로는 배움의 기회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들은 사람은 이상하게 기분이 상한다. 맞는 말이었음에도 억울하고, 괜히 위축되고, 관계의 온도가 뚝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도대체 왜일까. 지적은 왜 이렇게 늘 못되게 들릴까. 우선 지적이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작동한다. 지적을 하는 사람은 사실상 옳음의 위치, 더 많이 아는 위치, 더 정확한 시선의 위치에 서 있다. 그 자체가 이미 위계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기 때문에, 나는 말하고 너는 들어야 한다는 구조. 이 말은, 그 내용이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이미 관계 안에서는 감정적 상하를 만들어낸다. 지적이 못되게 들리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말은 나를 향하고 있지만, 나를 배려하진 않는다. 지적이 통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감정이 삭제된 채 도착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은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언어는 감정 없는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지적은 사
당신의 계절이 궁금합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가을입니다. 미처 물들지 못했던 가로수 잎이 빗물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빠르게 떨어지는 기온만큼이나 가을은 급하게 떠나는 것 같습니다.늘 맞이하는 계절, 가을이지만 높고 푸 른 하늘과 알록달록한 단풍이 특히나 귀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흔히 사람의 삶을 계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1년마다 맞이하는 사계절이 있고, 생애 전체를 아우르는 사계절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가능성과 기회로 꿈틀거리는 봄, 집중과 성장의 왕성한 기운이 가득한 여름, 뿌린 대로 거두는 수확에 대해 성찰하는 가을, 지난 시간의 아쉬움과 다음 계절을 준비함에 설레는 겨울처럼요. 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삶의 계절을 느껴봅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며 미루기만 했던 글쓰기, 하지만 제게 다가온 인연이란 계절을 맞이하며, 그간 잊고 있었던 제 마음속 행복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습니다. 계절의 시간을 지나면 저도 수확할 날이 오겠지요. 삶의 계절,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계절은 다르지 않을까 조용히 생각해봅니다. 최근에 한 여배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연기도 잘하고 예쁜, 요즘 한창 뜨는 배우입니다
공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불안하면 마음이 미래를 향해 있고, 우울하다면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아파서 우는 사람에게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까지 그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예전의 좋았던 시절을 놓지 못해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우울감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왜 저렇게 신이 났지’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자신을 사랑하며 돌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환경이 좋아서 그럴 거야. 돈이 많아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 거야. 사랑 많이 받고 자랐을 거야.’라며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주어진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겉모습은 마음의 그림자일 뿐, 실상을 보려면 눈을 감아야 할 때도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래 전 한 헬스 트레이너 말이 떠오릅니다. “선생님 너무 멋지세요.”라며 인사했더니 “저는 겉만 번지르르한 빛 좋은
감정은 판단의 적인가, 조력자인가 사람은 늘 선택의 연속 속에 산다. 오늘 점심 메뉴부터, 내년 진로,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요한 결정일수록 ‘감정’이 개입된다. 누구나 알고 있다. 흥분하거나 초조할 때 내린 결정은 대부분 후회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반복한다. 왜 그럴까. 이 질문은 감정과 판단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게 만든다. 최근 심리학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히 “감정은 이성의 방해물”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판단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이 감정이 충동성으로 이어질 때의 위험성에 주목한다. 임상심리학자 매튜 V. 엘리엇(Matthew V. Elliott)과 연구진은 2022년, 감정 기반 충동성과 위험한 의사결정 간의 메타 분석을 발표했다. 90편 이상의 연구를 종합한 이 논문에 따르면, 감정에 의해 촉발되는 충동성(Emotion-Related Impulsivity)은 위험한 판단과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격한 감정이 순간적인 결정을 불러오고, 그 판단은 실패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지점은 ‘감정 중심 판단의 습관화’다. 예일대학교
<내일 세상을 떠나도 오늘 꽃에 물을 주세요>를 읽었습니다 얼마 전, 폐암 2기 진단을 받았다는 연락이 아는 동생으로부터 왔습니다. 소위 말하는 빅3라고 불리는 대형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은 3개월 후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수술은 잘 마치고 현재 힘겨운 항암치료 중에 있습니다. 늘 밝고 긍정적이고 무엇이든 나누기를 좋아하는 후배여서 아끼고, 미처 제가 마음을 쓸 수 없는 부분까지 살피는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연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오히려 더 힘들게 할 거 같아서 그저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섣부른 위로가 더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습니다. 대신 후배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한 권이 떠 올랐습니다. 혹시 병원에서 ‘언어 처방전’을 받아 본 적이 있나요? 소개해 드릴 책은 ‘암철학 외래’에서 언어 처방을 하는 병리학과 의사인 ‘히노 오키오’가 쓴 『내일 세상을 떠나도 오늘 꽃에 물을 주세요』입니다. 저자의 ‘암철학 외래’는 의사와 환자의 입장을 넘어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는 공간입니다. 또한 해결되지 않는 괴로움을 대화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공감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할 걱정과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서로의 잘못된 해석으로 오해가 되기도 합니다. 비 내리는 날, 산책하는 길은 고요해서 빗소리마저 힐링 되어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불안한 마음, 머리 아픈 고민은 내리는 비와 함께 흘려보내고 마음을 빗소리에 기대어 봅니다. 나에게 놓인 환경, 잘못된 판단에 대한 죄책감들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숨이 막히고 답답함에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나이대에 맞는 고민, 딸은 말합니다. “엄마, 나 키 크고 싶어. 친구들은 다들 키가 커, 키는 유전이래”라며 딸은 고민하고 걱정합니다. 엄마인 제가 볼 때는 성장할수록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용기, 인내가 필요해 보입니다. 곁에서 보는 지인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는 어려워지지만, 다들 열심히 해. 그래서 느긋하게 있으면 안 돼. 공부 잘할 수 있도록 챙겨줘.” 달라지는 환경에 의해 마음이 요동치고 혼란스러움에 허우적거릴 때, 옆에서 나를 바라보며 도움의 손을 내미는 딸이 보였습니다. 두려움은 마음의 그림자일 뿐, 행동으로 빛을 비추면 사라진다. -마르틴 루터 킹
우리는 마지막 장면을 기억한다 한 관계의 평가는 언제 결정될까. 누군가는 오랜 시간의 신뢰를 근거로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단 한 번의 실망을 끌어와 그 관계를 단정 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또 다른 기준을 제시한다. 사람은 그 관계의 ‘마지막 순간’에 경험한 감정을 기준으로 전체를 판단한다고 말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최종 인상 효과(Recency Effect)’라고 부른다. 독일의 심리학자 허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는 1885년 기억 실험을 통해 처음 이 개념을 정리했다. 그는 무의미한 음절 목록을 피험자에게 제시한 뒤 어떤 순서의 단어를 더 잘 기억하는지를 측정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목록의 앞과 뒤, 특히 마지막 항목을 유독 잘 기억했다. 즉 기억은 순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끝에 배치된 정보일수록 인지에 더 오래 남았다. 이는 단순한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사건을 해석하고 인상을 형성하는 전반적인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이후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아쉬(Solomon Asch)는 사람에 대한 인상 형성 실험을 통해 이 개념을 관계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같은 성격 정보를 단어 순서만 바꾸어 제시했을
장례희망 어느새 하늘은 높아지고 단풍을 기다리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요즘처럼 계절이 변하는 환절기가 되면 더 많은 부고 소식이 전해집니다. 대부분은 가벼운 감기 몸살 정도로 지나가는데 미처 그 변화의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장례식장에 가 보면 준비된 이별도 보이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장례식장에는 40대 초반인 고인의 아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울먹이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아픈 데도 없었는데... 약도 고혈압 약밖에... 그런데 깨워도...” 자꾸 끊어지는 말 속에서 갑작스러운 이별의 충격과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고인의 아내나 다른 자녀는 슬픈 기색만 있을 뿐이었는데 그분만 유독 울어서 인상 깊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각별했을 거라는 추측만 할 따름입니다. 혹시 악동뮤지션이라고 남매로 구성된 듀엣 그룹을 아시나요? 보통 ‘악뮤’라고 줄여서 부르고 있습니다. 멤버 가운데 오빠인 이찬혁 군이 만들고 부른 노래 가운데 ‘장례희망’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화자는 고인이 된 자신입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크지만 재치있고 경쾌한 곡입니다. 처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