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언을 남기고 싶나요?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만나러 갑니다."
눈부신 가을볕 아래에 산들거리는 바람이 붑니다. 끝나지 않을 거 같던 여름이 떠나고 어느새 가을이 들어섰습니다. 휠체어를 탄 엄마가 희고 마른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저를 반깁니다. 언제부터이지 엄마는 손을 그냥 흔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율동 하듯이 손을 펴고 손목을 좌우로 돌리며 반짝반짝합니다. 어린애같은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짠하기도 합니다. 엄마의 매일은 변함이 없습니다. 같은 방을 쓰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반복되고, 노래교실 선생님 근황도 늘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일상적이지 않은 질문을 해 봅니다.
“엄마!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우리한테 꼭 하고 싶은 말 없어?” 엄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잘 살고 있는데 무슨 말을...”하고 얼버무립니다. 다른 말로 바꿔서 다시 물어봅니다. “만일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할 거 같아?” 이번에는 바로 말씀하십니다.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겠어.” 관계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은 걸까요? 엄마의 유언을 미리 알고 싶어서 한 질문이었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다음에는 유언이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야겠습니다.
김훈 작가의 산문집 <허송세월>에 보면 유언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미안하다”를 남겼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님은 임종의 자리에서 “매화 화분에 물 줘라.”하고 말씀하셨답니다.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는 “네 어머니가 밤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 드려라”라고 유언하셨답니다. 김훈 작가는 이 세 분의 유언 중에서 김용택 아버지의 유언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은 글을 씁니다.
“이 유언은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김용택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인생의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정도 유언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래고 성실한 노동의 세월이 필요하다. ”
유언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담겨있고, 그 삶을 함축하기도 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김용택 시인 아버지의 진솔한 유언에서 읽히는 마음도 있습니다. 떠나는 내가 아닌 남겨진 아내에 대한 관심과 염려입니다. 이런 게 소위 말하는 찐사랑 아닐까요? 추측해보면 시인의 아버지는 날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고생하는 아내가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나 봅니다. 아내를 위해 연탄보일러를 놓아 줘야겠다고 늘 생각했을 겁니다. 유언을 통해 아내를 향한 자신의 마지막 마음을 그렇게 전한 것입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유언이 있나요? 어떤 유언을 남기고 싶은가요?
저는 후회의 언어가 아닌 사랑의 언어, 감사의 언어, 용서의 언어, 행복의 언어를 남기고 싶습니다. 사랑을 연습하고, 감사를 훈련하고, 용서를 배우고, 행복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