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미룬 선택이 남기는 비용


사람들은 선택을 두려워한다. 선택은 책임을 동반하고, 책임은 불확실성과 후회를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을 가능한 한 미루거나, 다른 이에게 넘기거나, 상황이 알아서 흘러가기를 기다린다. 흔히들 ‘결정 피로’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은 결정 자체가 피로한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만들어내는 비용이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회피적 의사결정’이라 부른다. 분명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데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일시적인 안도감을 얻는 방식이다. 당장은 안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공백은 다른 선택들로 채워진다. 미루는 사이 기회는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하거나, 최악의 경우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굳어진다. 결국 선택하지 않은 대가를 자신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관계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된다. 불편한 대화가 예상되면 차라리 침묵을 택하고, 이별을 결심하지 못해 모호한 상태를 이어간다. 갈등을 조율하기보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는 말에 기대는 태도 역시 선택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쌓이고, 결국 더 큰 폭발로 돌아온다. 선택하지 않음은 중립이 아니라, 종종 가장 소극적인 공격이 된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회피적 태도는 개인의 심리적 구조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선택을 미룬다. 더 나은 옵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모든 것을 망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을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놓치고, 선택의 무게는 점점 더 커진다. 결국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심리적 마비 상태에 도달한다. 이것이 선택하지 않음의 가장 큰 함정이다.

 

문제는 이 비용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잘못 선택한’ 경우에는 명확한 실패가 보인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경우에는 실패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비용은 오히려 더 크다. 배우지 못한 경험, 사라진 가능성, 관계의 균열, 축적된 피로. 이것은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간과된다.

 

선택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삶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타인의 선택, 혹은 상황의 우연에 의존하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자율성은 줄고, 무력감은 늘어난다. 스스로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감각은 곧 불안으로 전환되고, 이 불안은 다시 선택을 더 미루게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결정 피로’라는 말의 실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복된 미루기가 오히려 더 큰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선택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그 위험은 최소한 방향을 정해준다. 선택하지 않는 태도는 표류와 같다. 방향 없이 흘러가는 배는 결국 가장 불리한 곳으로 떠밀려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태도다. 잘못된 선택은 수정할 수 있지만, 선택하지 않음은 수정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삶은 누군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의 빈자리는 나의 몫으로 돌아온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일시적 안도감은 결국 더 큰 피로와 후회를 남긴다. 지금 당장의 불안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태도다. 선택하지 않는 태도가 만들어내는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그 비용을 줄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완벽하지 않아도 선택하는 것이다. 그 작은 결단이야말로 삶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최소한의 힘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