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나는 왜 타인의 삶을 따라 사는가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군가의 선택,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말이 너무도 손쉽게 나의 ‘참조점’이 되는 세상. SNS 피드와 유튜브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당신은 이 사람보다 뒤처져 있지는 않나요?”, “이런 삶을 부러워한 적은 없나요?”,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가요?” 이런 질문들은 은근한 자극처럼 반복되며, 타인의 삶을 단지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새 따라 살아야 할 삶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타인의 삶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불안이 자라고, ‘저 사람처럼 되면 나도 괜찮아질 것 같은’ 환상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삶은 타인을 흉내 내는 과정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가 아니라, 얼마나 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가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타인이 기준이 되는 순간, 자기 삶의 감각이 무뎌진다는 데 있다. 무엇이 좋고 싫은지, 무엇에 끌리고 무엇에 불편함을 느끼는지조차 알기 어려워진다. 그 대신 ‘인정받는 취향’, ‘유행하는 선택’, ‘많이 본 경로’에 나를 끼워 맞춘다. 그렇게 우리는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말을 하며, 비슷한 삶의 경로를 따라간다. 개성은 위험이고, 자기다움은 비효율로 간주된다. 실험보다 안정된 결과가 중요시되고, 검증된 성공이 개인의 방향이 되어버린다.

 

물론 타인을 통해 배우는 것은 성장의 일부다. 사회는 타인을 통해 사회화되고,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자리를 찾는다. 그러나 배움과 모방은 전혀 다르다. 참조는 성장을 위한 재료가 될 수 있지만, 무분별한 모방은 방향을 잃게 만든다. 특히 모방의 결과가 실패로 이어질 때,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시작된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못 살까”, “나는 왜 저렇게 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자기불신을 키우고, 더 격렬한 비교로 이어진다. 타인을 향한 선망이 자신에 대한 혐오로 전환되며, 비교는 끝없는 모방의 루프를 만든다.

 

이런 구조에서 자란 사람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까’보다 ‘어떻게 보여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나의 감각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기준은 언제나 외부에 존재하며, 평가는 타인의 몫으로 전락한다. “나는 이걸 진짜 좋아하는 게 맞을까?”, “내가 틀린 건 아닐까?”라는 불안은 선택 하나조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끊임없이 조정되고 해석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타인을 닮고 싶다는 감정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태도나 삶의 방식에 감탄하며 영향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감탄이 곧바로 동일화로 이어질 때, 문제는 시작된다. ‘닮고 싶다’는 마음이 ‘똑같아지고 싶다’는 강박으로 변할 때, 내 고유한 조건과 배경은 삭제되고 오직 결과만이 남는다. 그렇게 시작된 모방은 언제나 조급하고, 언제나 결핍을 동반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은 정말 ‘내가 원한’ 것인가? 누군가처럼 보이기 위해, 누군가처럼 살기 위해 선택한 건 아닌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감각, 나의 언어, 나의 속도는 어떻게 사라졌는가?

 

비교하고 흉내 내고 실망하는 이 루틴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점점 놓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사라지고, ‘나는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라는 이미지가 모든 선택을 덮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감각의 회복이다. 감정을 자각하고, 욕망을 명료하게 들여다보며,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기 삶의 방식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훈련이 절실하다.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싫어하는 것을 미룰 수 있어야 한다. 닮고 싶음과 흉내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고, 참조와 모방 사이에는 반드시 자기만의 필터가 존재해야 한다. 남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나를 통해 삶을 선택하는 시대에 들어서야 한다. 진짜 삶은 타인의 프레임 바깥에서 시작된다. 비교를 멈출 때, 흉내를 버릴 때, 마침내 우리는 ‘자기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