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감정에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 내역은 월 단위 그래프로 정리되고, 수면 시간은 스마트워치로 측정된다. 사람들은 칼로리를 계산하며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 기록을 수치화해 자신의 신체 변화를 추적한다. 감각과 경험은 더 이상 흐릿하게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감정만은 여전히 수치화되지 않는 예외로 남아 있다. 감정은 흐릿하고 비논리적인 영역이라는 전제가 사람들의 사고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야말로 가장 많은 오해를 낳고, 때로는 인간관계를 가장 크게 무너뜨리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기분 탓’, ‘그냥 싫었어’, ‘왠지 화가 났어’ 같은 말로 감정을 표현한다. 자신조차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은 종종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고, 결국 ‘예민하다’거나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는 말로 무시되기 일쑤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은 곧 존중받지 못하는 감정이다.

 

감정은 분명 비이성적일 수 있다. 그러나 추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 반복적으로 무기력해지는 시간대, 혹은 유난히 자주 지치는 상황들은 나름의 패턴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수치와 기호로 표현되는 데이터의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감정은 기록되지 않으면 흐르고, 흐르는 감정은 곧 증발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해지기 어렵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느 상황에서 주로 무력감을 느끼는지를 시간대별로 표기하고, 그 감정 강도를 1에서 10 사이로 단순하게라도 수치화해본다면 의외로 선명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특정 대화 이후에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피로감, 업무 후 귀가 직후의 우울감, 주말 저녁의 외로움 등은 구조화되지 않았을 뿐, 반복되는 정서 반응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관측 가능’한 것이다. 감정을 완전히 데이터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추적 가능성만 확보돼도 삶은 한결 덜 흔들린다.

 

데이터화된 감정의 또 다른 장점은 자기 감정의 언어화 능력을 키운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갈등을 피하거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후회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그럴 때 “그냥 기분 나빴어”라는 말보다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불쾌감이 강도 8 정도로 느껴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감정의 전달력은 훨씬 높아진다. 말할 수 있다는 건 곧,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방어가 아니라 공유의 시작이 된다. 자기 감정을 정량화하고, 스스로 들여다보는 사람은 결국 타인의 감정에도 민감해진다.

 

현대 사회는 객관성과 증거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오가는 수많은 감정들은 그 구조상 객관적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감정에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 얼마나 반복되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증폭되는지를 관찰하는 습관은 단순한 ‘마음 관리’의 차원을 넘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모 대신 조율을 선택하게 하는 내면의 기술이다.

 

감정도 결국은 기억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변형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감정의 흐름을 날씨처럼 기록하고, 불쾌나 피로의 체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석해두는 사람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조금 더 선명하게 쥘 수 있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억누른다는 뜻이 아니다. 흐름을 파악하고, 감정의 기울기를 조절하며, 불필요한 파열음을 줄이는 방식의 ‘관찰’이다. 이는 더 나은 인간관계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감정은 이해받기를 원하지만, 그만큼 설명되기를 요구한다. 이성의 언어로 감정을 소거할 수 없다면, 최소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감정에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것은 과잉 반응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기란 어렵다. 오늘도 반복되는 감정이 있다면, 그 안에 어떤 패턴이 숨겨져 있는지를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