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주의 행복한 이별

새롭게 보기를 연습합니다


퇴근 후 운동하러 갑니다. 제 앞에서 인도 쪽으로 큰 가지를 뻗은 단풍나무가 시선을 끕니다. 풍성한 단풍잎은 하나하나 자기만의 색을 뽐내며 눈부시게 일렁입니다. 하늘과 가까운 잎들은 진한 빨간색으로, 그 아래는 주황색으로, 기둥과 가까울수록 노란색으로, 색의 농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황홀한 그러데이션을 이루고 있는 단풍잎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 옆을 지나가다가 뒤돌아섭니다. 그러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붉디붉은 단풍 위로, 한 뼘쯤 되는 곳에 조금 볼록해진 반달이 낮게 떠 있습니다. 아직 어둠이 찾아오지 않아서인지 빛나기보다는 하얗고 조용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초승달을 본 게 얼마 전인데 벌써 저렇게 달이 차오르고 있네요.

 

최근에 저는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작은 기쁨을 찾고 오늘의 감사에 다가설 수 있는 ‘나 혼자 챌린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한순간만이라도 잠시 멈춰서서 새롭고 낯설게 세상을 보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방금 그런 순간을 만난 거지요.

 

황홀하면서도 경이로운 시간, 마치 제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형언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저는 챌린지에 성공했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제가 이런 시도를 하게 된 건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만난 주인공 때문입니다. 그는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 속의 조르바입니다.

 

그는 60대 중반의 아저씨입니다. 거친 말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저로서는 친해지기가 힘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누리려는 듯 보이는 그의 모습에는 감탄하게 됩니다.

 

책 속에서 화자는 조르바에 대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살고, 모든 사물을 처음 보는 듯이 대하고, 매일을 기적으로 만드는 삶을 삽니다. 60번이 넘도록 찾아온 봄에 대해서도 아이처럼 환호하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굴러가는 돌에도 놀라는 분이지요.

 

이처럼 조르바의 삶에서 느껴지는 아이 같은 생동감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세상을 대하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삶에서 풍기는 생기를 조금이라도 흉내 내고 싶어서 ‘나 혼자 챌린지’를 시작한 겁니다.

 

지금‧여기에 충실한 삶을 연습하는 거지요.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장소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들, 어김없이 찾아오는 점심시간과 저녁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한 루틴들이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지루함이라 느끼며 탈출을 꿈꾸기도 합니다.

 

‘행복하려면 오늘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늘을 제대로 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오늘이란 ‘명제’ 앞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저의 챌린지처럼 비슷한 루틴 안에서도 작은 노력으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매년 보는 단풍, 매일 뜨는 달을 마주하면서도 제가 경이롭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작은 시간들이 습관처럼 쌓여갈 때 행복도 발견하며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