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욕과 질투, 그 끝없는 이야기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있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모임에서 빼놓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이성에게 갑자기 관심을 가지며 다가가는 친구가 있더라는 어이없는 이야기들 말이다. 당혹스럽고 황당한 순간, 우리는 종종 자책하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남들로 하여금 질투를 유발하는 요소라도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은 결국 관계를 이어가는 우리 모두가 어느 순간, 크든 작든 느껴왔던 질투와 소유욕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생각해보면 나의 학창 시절에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친구가,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하면 갑자기 그 사람에게 접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마치 내가 가진 것이라면 자기도 가져야 한다는 듯 행동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 감정의 정체가 소유욕과 질투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씁쓸함만 남았다. 내가 가진 것이라면 자기 것처럼 가지려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처럼 여겼으니 말이다.
철없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겠거니 하고 넘길 수만은 없는 것이, 이런 문제는 단지 나와 그 사람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유욕과 질투는 사회 곳곳에 드리워져 있고,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 많은 사람이 괴로워할 수 있다. 내가 추진하려던 기획을 갑자기 빼앗으려 하거나,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동료들 속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
역사 속에서도 질투와 소유욕이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켜 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오셀로가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에 대해 극심한 질투에 빠지며 결국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는, 질투와 소유욕이 개인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오셀로의 파괴적인 질투는 그가 진정한 사랑을 느낀 것이 아니라, 데스데모나를 자신의 소유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감정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질투와 소유욕은 사회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어내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왜곡한다.
질투와 소유욕은 결국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또한 이러한 감정의 순환 속에서 어느 순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친구가 다가오는 것을 불안하게 느끼거나,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누군가 더 빨리 성취할 때 밀려오는 불안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감정을 건강하게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끝없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까? 우선, 나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될 때, 타인을 통해 자신을 평가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일에 집중하고,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가면 남의 인정과 사랑에 덜 기대게 된다. 결국, 진정한 관계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을 때 완성된다.
또한, 질투와 소유욕이 강한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들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감정을 흔들고 통제하려 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내가 하려던 일을 방해하거나, 나의 성과를 가로채려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상황에서 내 능력과 가치를 믿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내면의 안정은 그들이 아닌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이 끝없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관계를 위해 나 자신을 인정하고, 나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 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타인의 평가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나의 길을 내가 주도할 때 남의 행동에 덜 흔들리게 된다. 결국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며, 그것이야말로 나와 타인 모두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