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의 마음길

우리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사람들은 때때로 착각 속에서 살아요. 내가 진실하다면 타인도 내 마음과 같은 온도로 나를 대해 줄 거라는 믿음 말이죠.

 

저는요. 사람들이 너무 그립고 좋다가도,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사람들이 싫어져요. 나의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하다가도 갑자기 감정이 차가워지고 냉정해지기도 하죠.

 

이런 감정의 변화는 사랑과 상처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일까요?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쉽지 않네요.

 

 

집에 가는 길, 동네 경로당 할머니들께서 의자에 앉아 “형제들도 우애가 있으려면 양보해야지, 양보를 안 하면 우애도 금이 가.”라며 의견을 주고 받아요.

 

제 생각은요. 편안하고 화목해 보이는 집안에는 누군가의 헌신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요, 그 헌신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적인 의무에 의한 것이면 그 사람의 삶은 버거워지죠. 그런 사람 중, 묵묵하게 참기만 하고 살다가 ‘화병’ 생기고, 버티다가 또 다른 병으로 자기 인생은 사라져 버려 인생이 서글퍼지더라고요.

 

화목함이나 불행함의 형태는 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즐겁게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내고 있다면 제삼자의 다양한 시선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활짝 웃고 있어야지만 행복한 것일까요? 평화로운 얼굴 뒤로 깊게 파여 곪아버린 속마음은 알기도 힘들고, 알아주지도 않죠.

 

명절날이 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대로인데, 우리 집 어른들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한동안 어색하고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그런 날은 그리움과 상실감이 함께 공존하는 순간이죠. 익숙한 건 늘 영원하길 바라지만, 세월 따라 익숙함도 다 사라지고 낯선 풍경만 존재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에요.

 

저는 빨간 김치를 좋아해요. 할머니께서는 팔십 대 후반까지도 김장을 100포기씩 하셨어요. 김장하실 때 할머니를 도와드리지 못했지만, 저를 나무라지 않으셨죠. 할머니는 김장할 때도 오전에는 경로당 친구들과 함께 김치를 씻고 소금을 뿌린 후 절여두면, 저녁에 일하고 돌아온 식구와 함께 모여서 김치 양념을 버무리곤 하셨어요. 할머니를 떠올리면 더 잘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늘 미안했어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엔, 할머니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어요. 저는 할머니께서 주신 잔잔한 깊은 사랑을 자연 바람의 오감을 통해 다시 느껴요.

 


오직 한 사람 -황화자

 

유방암 진단받은 나한테

남편이 울면서 하는 말,

 

“5년만 더 살아”

 

그러던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손주 결혼식에서 울었다.

아들이 동태찜 사도 눈물이 났다.

며느리가 메이커 잠바를 사줄 때도 울었다.

오직 한 사람 남편이 없어서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제자님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지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자유롭게 뛰어놀다 해가 지고 있어요. 석양빛을 등지고 마중 나오시던, 할머니를 향해, 해맑게 미소 지으며 달려가 안겼던, 어린 시절 기억나지요. 그 순간 장면을 할머니와의 인생 사진 한 컷으로 제자님의 마음에 고이 접어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을 많이 만들면 좋겠어요.”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