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욕망을 다루는 어른의 태도


사람은 큰 시련보다 작은 충동 앞에서 더 자주 흔들린다. 놀고 싶은데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순간, 먼저 연락하고 싶은데 상대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 하나만 먹고 끝내야 하는데 자꾸 손이 가는 순간, 다 말해버리고 싶은데 끝내 삼켜야 하는 순간. 삶은 대체로 이런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단한 결심보다 사소한 유혹이 더 자주 사람을 무너뜨리고, 거창한 위기보다 즉각적인 욕망이 더 쉽게 일상을 흔든다. 그래서 어떤 삶을 사는지는 결국 ‘무엇을 원하느냐’보다 ‘원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갈리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욕망을 부정적으로 배운다. 참아야 하는 것, 눌러야 하는 것,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어릴 때부터 “하고 싶다고 다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하고 싶은 대로만 사는 삶은 쉽게 무너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욕망을 다루는 법이 아니라 억누르는 법만 배운다. 그러다 보니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참았던 식욕은 폭식으로, 눌러둔 분노는 엉뚱한 대상에게 향하는 짜증으로, 미뤄둔 외로움은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돌아온다. 욕망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꿔 다시 나타난 것뿐이다.

 

그래서 어른의 태도는 단순히 참는 데 있지 않다. 욕망을 다룬다는 것은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욕망이 올라오는 순간 나와 욕망 사이에 잠깐의 거리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지금 내가 이걸 정말 원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지금 당장 견디기 싫은 걸까.” 이 질문을 한 번이라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욕망에 끌려가지 않는다. 반대로 이 질문 없이 곧장 행동하는 사람은 늘 그 순간의 기분에 삶을 맡기게 된다.

 

욕망은 대개 즉각성을 원한다. 지금 놀고 싶고, 지금 확인받고 싶고, 지금 먹고 싶고, 지금 풀어내고 싶다. 욕망은 언제나 “지금”을 향한다. 하지만 삶은 대부분 “나중”을 요구한다. 지금은 참아야 하고, 좀 더 기다려야 하고, 감정을 정리한 뒤에 말해야 하고, 당장 기분이 좋아지는 선택보다 오래 남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때 사람은 둘로 갈린다. 순간의 충동을 곧장 따라가는 사람과, 그 충동을 잠시 통과시키는 사람. 어른은 대개 후자에 가깝다.

 

물론 이 말이 곧 욕망 없는 사람이 어른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어른이 될수록 욕망은 더 많아진다. 쉬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관계를 붙잡고 싶은 욕망, 소비하고 싶은 욕망,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은 욕망까지. 다만 어른은 그 욕망이 올라온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행동으로 번역하지는 않는다. 욕망이 있다고 다 따르지 않고, 충동이 왔다고 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생기는 짧은 멈춤, 그 멈춤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바로 연락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서운해서든 보고 싶어서든, 확인하고 싶어서든. 하지만 어떤 연락은 늦게 할수록 관계를 살리고, 어떤 말은 하루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다. 먹고 싶은 것도 그렇다. 지금 당장의 욕구를 채우면 기분은 잠깐 좋아질지 몰라도, 그 뒤에 따라오는 후회를 이미 알고 있다면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놀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근면이나 의지가 아니다. 그 순간의 욕망이 ‘진짜 원하는 삶’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를 아는 감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다룬다고 하면 ‘억제력’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무작정 억누르는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계속 참기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더 크게 무너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억압이 아니라 조율이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몸의 피로인지, 인정 욕구인지, 외로움인지, 단지 순간의 무료함인지 알아차리는 일. 욕망은 내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다루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피곤한 사람은 의지로 버틸 게 아니라 쉬어야 하고, 외로운 사람은 참을 게 아니라 관계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 단지 심심한 사람은 모든 자극을 욕망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욕망을 잘 다루는 사람은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것들의 성격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자기 존중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욕망 앞에서도 함부로 살지 않는다. 자신의 하루를 가볍게 망치지 않고, 자신의 몸을 함부로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아무 데나 던지지 않는다. 즉각적인 쾌락보다 오래 남는 상태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반대로 자신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사람은 욕망 앞에서 자주 무너진다. 어차피 내일 또 힘들 거라는 체념, 어차피 나 하나쯤이야 하는 포기, 어차피 지금 좋으면 됐다는 식의 순간적 해석이 반복되면 삶 전체의 리듬이 흔들린다. 욕망을 다루는 태도는 결국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그래서 어른의 태도란 단순히 참는 능력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마음을 곧바로 인생의 방향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욕망은 언제나 진심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모든 욕망이 진심인 것은 아니다. 어떤 욕망은 피로의 언어이고, 어떤 욕망은 외로움의 우회 표현이며, 어떤 욕망은 그저 오늘 하루를 버티기 싫은 마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것을 다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삶은 큰 선택보다 작은 충동들을 다루는 방식에 의해 더 자주 결정된다. 오늘 밤 이 말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지금 이 소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이 감정을 바로 풀어낼 것인지 하루 더 가져갈 것인지. 사람은 그런 사소한 선택들의 반복 속에서 자기 삶의 방향을 만든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것이 줄어드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지나가게 둘지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우리는 수없이 흔들리고, 수없이 마음이 앞서고, 수없이 지금 당장을 원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이다. 다만 그 욕망을 내 삶의 주인으로 앉히지 않는 일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마음을 곧장 따라가는 것과, 잠시 바라보다 흘려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을 만든다.

 

어른은 욕망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욕망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자기 삶의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건 의지가 아니라, 이 짧은 거리다. 하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하는 행동 사이의 그 짧은 거리. 삶은 바로 그 거리에서 수준이 갈린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