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주의 행복한 이별

기록하는 삶 - 벚나무처럼, 어머니처럼


가로수로 피었던 연분홍 벚꽃이 부드러운 연두색 나뭇잎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짧은 봄 시절 동안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걸까요? 생명을 틔우고 키우느라 나무는 말없이 분주한 듯합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벚나무는 흐르는 시간을 몸에 새기고 있습니다. 두껍지 않은 몸 깊숙한 곳에 기억으로 간직하려나 봅니다. 그 기억이 언제 다시 읽히고 해석될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뭉클해집니다.

 

그런 날,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녀는 입가에 웃음을 잔뜩 머금고, 무언가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투로 운을 뗍니다. 저는 잔뜩 기대하며 친구 쪽을 향해 몸을 기울였습니다.

 

“주말에 엄마집에 갔거든…. 그런데, 글쎄…. 우리 엄마가 일기를 쓰더라.”

친구의 말끝에서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이 묻어납니다. 저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원래 써 오셨던 거 아냐?”

 

친구의 친정어머니는 70대 후반이셨습니다. 예전에는 가계부도 쓰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몇 해 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생활하시며 외로워하시는 거 같다고 했습니다. 노인정에 가기에는 당신 나이가 아직 젊다고 생각하셨고, 딱히 종교도 없어 대부분 집에 계셨던 터입니다. 다행히 자녀들이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 자주 찾아뵙던 중이었습니다.

 

주말, 친구가 엄마를 찾았을 때 초등학생용 공책이 식탁에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아주 오래전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별거 없으면 버리려고 펼쳐봤는데 엄마의 일기장이었던 겁니다. 앞부분 몇 페이지는 가게에서 산 것들만 서툰 글씨체로 소소하게 적혀있었는데, 점점 글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글씨도 예뻐지고 있다며 친구는 작게 웃었습니다. 딸이나 아들이 다녀간 이야기, 화가 났던 이야기, 장을 본 이야기, 누군가에게 들은 건강 정보 같은 게 짧게 쓰여있었다고 합니다. ‘뭐 이런 걸 쓰는 거지’ 싶은 내용도 있었지만, 점점 글이 길어지고 엄마의 마음이나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은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어머니가 존경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일기 쓰기를 시작하게 된 정확한 계기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게 느껴졌거든요. 얼마 전에 읽고 좋아서 메모해 둔 글을 찾아 봤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오로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또 두려워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조앤 디디온

 

친구의 어머니는 무의식중에 일기 쓰기를 통해 외로움을 삭이고 위로를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어머니가 보내는 시간을 이제는 기록으로 남겨야 할 때라고 생각하셨던 걸까요? 훗날 자녀들이 그 글을 통해 그리움을 달래고 어머님의 시간을 해석해 달라고 말이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오래간만에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2달 전에 쓴 일기가 마지막이네요. 앞으로는 짧게라도 제가 보내는 시간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제가 보낸 시간은 ‘내 몸과 마음’ 어느 곳에라도 흔적이 남아있을 테지만,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떠올릴 수 없거든요. 그래서 글쓰기가 필요한 거 같습니다. 글로 시간을 잡아두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무에게나 읽히지 않는 나이테를 몸에 새기는 나무처럼, 저도 저 자신을 위해 오늘, 이 순간을 글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글쓰기로, 점점 지워지는 저의 시간을 새기고 싶습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