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왜 우리는 점점 쉽게 상처받는다고 느낄까


요즘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고.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걸리고, 누군가의 짧은 반응 하나에도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의심한다. 내가 예민해진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약해진 건 아닐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가 더 약해졌기 때문에 상처를 더 받는 걸까, 아니면 상처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달라진 걸까. 지금의 관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상처는 커진 것이 아니라, 해석이 많아진 것이다.

 

예전의 상처는 비교적 분명했다. 누군가가 노골적으로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관계를 명확히 끊어내거나, 눈에 보이는 사건이 있을 때 상처가 생겼다. 그래서 상처에는 ‘이유’가 있었다. 반면 지금의 상처는 훨씬 미세한 곳에서 시작된다. 답장이 늦었다, 말투가 평소와 다르다, 이모티콘이 없다, 나에게만 짧게 대했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관계의 신호처럼 읽힌다.

 

문제는 이 신호들이 대부분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상대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대개 자신을 향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를 무시한 건가”, “기분이 상한 걸까”, “이 관계가 변한 걸까”. 사실은 단순한 상황일 수도 있는 일이, 해석을 거치며 감정으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다. 인간은 원래 의미를 찾는 존재다. 특히 관계에서는 더 그렇다. 상대의 말과 행동 속에서 끊임없이 의도를 읽어내고, 그 의도를 바탕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한다. 문제는 지금의 관계 환경이 이 해석을 과도하게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제 너무 많은 정보를 동시에 접한다. 메시지의 속도, 답장의 길이, 말투의 변화, 읽음 표시까지.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신호들이 관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신호들은 대부분 애매하다.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해석을 낳는다. 인간은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자신의 생각으로 채운다.

 

그래서 지금의 상처는 사건보다 빠르게 만들어진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상처는 더 이상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과정 안에서 증폭된다.

 

이쯤에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상처받는가가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많이 해석하게 되었는가. 관계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정확히는 그 반대에 가깝다. 관계가 깊어져서가 아니라, 관계의 신호가 많아졌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오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처는 단순히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의 문제에 가깝다. 끊임없이 해석하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는 누구라도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해 강해지는 것보다, 해석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반응을 관계의 신호로 읽지 않아도 된다. 어떤 일은 정말로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덜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상처는 사건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사건을 얼마나 해석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덜 해석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상처받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보다 많이 해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