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주의 행복한 이별

날마다 다시 살아갈 준비


전날 내린 비 덕분에 청명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입니다. 하늘도 땅도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눈부시게 반짝거리네요. 눈에 보이는 모든 나뭇가지 끝에 봄빛이 설렘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목련은 어느새 흰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습니다. 마치 하얀 불꽃 같은 모양새로 말이죠. 이런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인 거죠.

 

그러나 이내 깨닫습니다. 이런 화사한 날씨 자체가 이미 저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제게 주어진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것을요.

 

이렇게 생명으로 가득한 날,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읽은 게 15년 전인데, 후반부는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설게 다가옵니다. ‘이런 장면이 있었어?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졌어?’ 놀라며 읽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그렇습니다.

 

“죽음에 임박해서,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며 모든 걸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꼈을 터였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도 엄마에 대해 눈물을 흘릴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걸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주인공은 양로원에서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식에 피곤해하고 귀찮아할 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총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그는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며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댑니다.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눈앞에 둔 그가 말년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듯한 장면입니다.

 

특히 저는 '다시 살아갈 준비'라는 표현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게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깨달은 셈이죠. 작중 화자인 뫼르소는 자신의 ‘살아갈 준비’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간의 충동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과는 다른 삶이지 않을까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저의 ‘다시 살아갈 준비’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기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조금씩 달라지는 삶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준비 가운데 하나가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하고, 후회와 죄책감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잠드는 게 저의 오늘과 내일을 위한 약속입니다. 또한, 단 한쪽이라도 책을 읽고 내 주변과 자신에게 한 발짝 더 내딛는 게 저 자신을 위한 다정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눈 부신 햇살에 나무 그림자가 더욱 짙어집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의 존재감을 더욱 또렷하게 만드는 것처럼 삶과 죽음도 그런 듯합니다. 날마다 다시 살아갈 준비가 필요한 이유 아닐까요?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소중한 것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비 갠 뒤의 맑은 하늘, 목련 꽃봉오리 하나, 손에 쥔 책 한 권, 이미 제 곁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다만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여겨서, 그 빛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죠.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느라 이미 가진 것의 눈부심을 놓치는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오늘처럼 맑은 날, 저는 그것을 조용히 돌아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니, 이미 충분했습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