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거울
친정으로 내려가는 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제 올라가냐는 물음에 다음 날 간다고 하자 그녀는 자기에게 잠시 들렀다 가라고 합니다.
“나 좀 만나러 와 줄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전화로는 힘들고, 전에 얘기했던 카페에도 같이 가자고 합니다. 강릉에 갈 때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저에게로 와 주었던 친구라 이번에는 제가 가기로 했습니다.2시간이 넘는 거리이고, 직접 운전해서 가는 건 처음이라 조금 일찍 출발했습니다. 말 그대로 청명한 가을 날씨입니다. 파랗고 높은 하늘은 투명한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구름은 흰 물감이 얇게 붓질 된 것처럼 느리게 퍼지며 흐릅니다. 한갓지지만 구불구불한 도로 앞으로는 산 능선이 계속 겹쳐지며 중첩되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새 능선이 나타납니다. 빨갛고 노랗게 변한 산들이 그려내는 능선이 마치 그림 같아서 가을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인제양양터널’을 지나고, 헤아릴 수 없이 또 다른 많은 터널을 지나 친구에게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집은 강변에 위치하고 건너편으로는 산들이 있어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친구는 정말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봅니다. 걸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닌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먼저 자기 사무실로 저를 잡아끕니다. 제가 가져간 호두 파이를 자르고, 친구가 만든 진한 밀크티를 컵에 담고 자리를 잡습니다.
친구는 최근에 심리 상담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길게 풀어냈습니다. 상담의 덕분인지 관계와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확실히 변한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감사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친구인데,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예전에 헤어질 때는 손만 흔들었었는데 저를 꼭 안아주고 잘 가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갑자기 손을 잡으며 제 손이 따뜻해서 좋다고 합니다. 친구와 저는 40년 지기지만 피차 스킨십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 모든 게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하는 친구의 모습이 좋아 저에게는 마치 새 친구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친구가 존경스럽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자 무언가를 시도하고, 삶의 후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그 모든 것을 실천하는 모습이 그녀가 가진 매력을 보여주는 듯했거든요.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 바쁜 일상을 조금 늦추고 내가 있는 곳을 둘러 봅니다. 습관적으로,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사는 건 아닌지 살핍니다. 깨닫고 알게 된 것에 대해 실천하는 용기를 내려 합니다. 마음속에만 있는 감사와 사랑이 아니라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합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그의 마음이 깊어지는 것을 보며 제 생각은 넓어지고 있습니다. ‘친구는 자신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준 그녀에게 다음에는 따스한 차라도 선물하려 합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5년의 하루도 후회 없이 살도록 감사와 사랑의 흔적을 남기기로 합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