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은 왜 늘 못되게 들릴까
“그걸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런 걸 왜 몰라?”
지적은 언제나 옳은 말처럼 보인다.
말의 겉모습은 정당하고 논리적이며, 때로는 배움의 기회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들은 사람은 이상하게 기분이 상한다.
맞는 말이었음에도 억울하고, 괜히 위축되고, 관계의 온도가 뚝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도대체 왜일까. 지적은 왜 이렇게 늘 못되게 들릴까.
우선 지적이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작동한다.
지적을 하는 사람은 사실상 옳음의 위치, 더 많이 아는 위치, 더 정확한 시선의 위치에 서 있다.
그 자체가 이미 위계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기 때문에, 나는 말하고 너는 들어야 한다는 구조.
이 말은, 그 내용이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이미 관계 안에서는 감정적 상하를 만들어낸다.
지적이 못되게 들리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말은 나를 향하고 있지만, 나를 배려하진 않는다.
지적이 통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감정이 삭제된 채 도착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은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언어는 감정 없는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지적은 사실을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를 통과해 감정을 건드리는 행위다.
상대는 그 지적이 자신의 무지나 실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늘하게 작용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그래서 반격하거나, 움츠러들거나, 불편해한다.
지적의 말에는 거의 항상 ‘선’이 들어 있다.
선을 넘었기 때문에 지적당하고, 선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 선은 대개 지적하는 사람의 기준이다.
자신의 방식이 정답이라는 전제 하에, 타인의 기준은 교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숨겨진 판단이 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말은 설명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평가에 가깝다.
상대가 말보다 표정을 더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그 말이 자신을 어떻게 느끼게 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했는가’는 단순한 말투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의 존중 여부, 감정의 온도, 관계 안에서의 위치가 모두 들어 있는 종합적인 신호다.
그래서 지적은 종종 말보다 태도가 더 아프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적은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쉽고 더 날카롭게 이루어진다.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라는 느슨한 기대가 오히려 더 큰 균열을 만든다.
지적이 관계를 회복시키기보다 멀어지게 만드는 이유는,
그 안에 감정을 헤아리는 연습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한다는 건 감정을 건드리는 일이다.
말은 대상이 아니라 사람에게 닿는다.
그래서 말의 내용보다 말의 방향이 중요하고,
옳은 말보다 따뜻한 말이 관계를 지켜낸다.
지적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지적은 타이밍이 전부다.
관계의 안전이 확보된 후에만 지적은 유효하다.
감정이 열린 상태, 신뢰가 형성된 상태에서만 그 말은 이해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지적은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일방적인 공격으로 해석된다.
결국, 지적은 말이 아니라 태도다.
지적의 말은 금방 사라지지만, 지적당한 감정은 오래 남는다.
지적은 옳은 말을 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도착했는지를 함께 책임지는 일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