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옥수수밭에서의 추억


옥수수와 감자 부자가 되었습니다.

 

요즘 부쩍 선물로 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반갑지만 않은 선물이었지만, 요즘에는 감사하게 받아서 맛있게 잘 먹는답니다. 먹거리를 챙긴다는 의미는 곧, 사랑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지요. 철없던 시절엔 귀찮게만 생각했는데,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행복을 나누는 그 사랑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옥수수를 다듬고 감자를 찌는 내내, 따뜻해진 내 마음도 조금씩 익어 가는 느낌으로 흐뭇해집니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두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 여름휴가 갔던 강원도의 어느 옥수수밭에서 찍었던 사진이 생각납니다. 그 사진은 마음속 보물상자에 고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땡볕이 뜨거웠고 가물었습니다. 큰애가 3학년 작은 녀석이 1학년으로 기억납니다. 학원을 운영했던 아빠의 일정 때문에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강원도 산골 마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처음으로 우리 네 식구만의 여름휴가였기에 더 설레고 들떴습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아빠 키보다도 훨씬 더 큰 옥수수밭을 등지고 나란히 서 있습니다. 옥수수 대는 푸르름을 자랑하듯 하늘을 향해 가지를 쭉 뻗어있고, 아이들은 마치 작은 요정들처럼 보입니다. 작은 녀석은 자기 팔뚝만큼 튼실한 옥수수를 들고 엉엉 울고 있습니다. 큰 녀석은 그런 동생이 안쓰러우면서도 속이 타는지 몸은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면서, 표정은 답답한 듯 동생을 째려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때 작은아들이 왜 울고 있었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이제라도 기억을 더듬어 잘 생각해 보니, 어쩌면 엄마의 극성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옥수수밭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갑자기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진 찍는 걸 유난히 좋아해서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가 예쁜 풍경을 만나면 어디든 아이들을 세워 놓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귀찮게 하는 엄마였으니까요.

 

그날도, 극성 엄마는 갑자기 사진을 찍자면서 뜨거운 땡볕 아래에 가만히 서 있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더워죽겠는데 옥수수를 들고 있으라고 하고, 활짝 웃으라고까지 했으니, 어린 아들은 얼마나 뜨겁고 괴로웠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큰 녀석은 똑똑해서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이 상황이 빨리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고분고분 잘 따라 줬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한 일입니다.

 

그래도 엄마로서는 이 장면을 생각하면 웃음부터 터져 나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시간으로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장면을 슬쩍 떠올리곤 합니다. 웃음으로 추억여행을 떠나면 행복한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거든요.

 

마음속 보물상자에 간직한 소중한 추억들은 나의 재산입니다. 삶에 지쳐 힘들 때나, 불현듯 서늘한 외로움이 찾아올 때, 한 장면씩 꺼내어 시간여행에 생각을 맡기다 보면 빛바랜 추억들이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그때 미처 알지 못해 서운했던 감정의 상처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래서였구나!

 

그때보다는 조금 더 자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기에 추억을 조금씩 새로고침 할 수 있는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입니다.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주요활동]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