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길을 걷다 문득 멈추는 순간이 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발걸음이 멈출 때면,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길이긴 할까. 그런 질문들은 꽤 오래 나를 따라왔다. 성취를 중심으로 짜인 세계에선 멈춘다는 건 곧 낙오로 간주되기도 하니까. 그러니 한 템포 천천히 가는 일, 잠시 길을 잃는 일, 혹은 우회하는 일은 늘 설명을 요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어쩌면 정확한 목적지조차 모른 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상태조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방향보다 중요한 건, 매 순간 내가 어떤 태도로 걷고 있느냐는 것이니까.

 

삶은 언제나 과정과 도착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도착만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었는데, 크고 나선 그 그림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증명해야 했다. 글을 써도, 누군가에게 읽히고 반응을 받아야 ‘의미 있는 글’이 되었고, 단순한 취향도 더 많은 이들의 취향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좋아하는 마음 자체보다 그걸로 무엇을 ‘이뤘는가’가 중요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어디에 도착했는가’에만 집중하게 된다.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방향을 바꾸는 것도 실패처럼 여기는 태도. 그런 사고방식은 종종 ‘살아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목표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방향은 있어야 한다. 다만 그 방향이, 남의 시선으로부터 파생된 건 아니어야 한다.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일에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쓸 수 있는가. 그 감각이 나의 방향이어야 하고, 그 감각을 지켜가는 태도가 나의 동력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스펙으로 환산되거나 결과로 측정되지 않는 가치일 수도 있다. 요즘은 점점 그런 비물질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속도와 결과보다 나의 감각과 태도에 충실한 삶. 그건 느리지만 덜 후회하게 되는 길이다.

 

누군가는 그걸 비효율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자세, 생각, 태도 같은 것들은 수치로 계량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언제나 그런 ‘비계량의 태도’가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누군가를 선택할 때, 숫자보다 성실함이나 꾸준함, 태도를 먼저 떠올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친구를 오래 유지하게 만드는 것도 유머감각이나 외모보다는 결국 ‘믿을 만한 사람인가’라는 태도의 문제였다. 심지어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조차, 다시 일어서는 힘은 ‘나는 이대로 끝나지 않아’라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결국 태도가 삶을 만든다는 말은, 단지 이상적인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구조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살기 위해선 ‘아직’이라는 시간을 견디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아직 능숙하지 않으며, 아직 아무 성과도 없다는 자각은 때때로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아직’이란 단어 안에는 가능성과 시간의 여백이 함께 있다. 아직이기에 포기하지 않았고, 아직이기에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직’이라는 말을 다정하게 바라보려고 한다. 그것은 미숙함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확장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여유롭게 살 수 있느냐고. 그럴 때면 대답 대신 이 말을 되뇐다. “그래도 중요한 건 여전히 나의 태도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내 태도를 믿기로 했다. 아직은 중간 어디쯤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어떻게 걷고 있는지가 내 삶의 모양을 결정짓고 있다고 믿는다.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주요활동]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