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중앙정부는 이주사회를 가질 수 없다
우리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정부는 이민정책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그 질문은 틀렸다.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정부는 이민정책을 소유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이민정책은 모든 것을 중앙이 설계해왔다. 비자 유형, 체류 조건, 귀화 절차, 노동 허가, 교육 지원... 서울 정부청사의 한 부서, 법무부 출입국정책단 한 사무실에서 백만 명의 이주민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러나 이주민은 서울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의성에, 영천에, 봉화에, 칠곡의 산업단지, 영양의 농촌 들녘에 산다. 그들이 마주하는 건 출입국관리소가 아니라, 면사무소의 민원담당자, 유치원의 원장님, 마을의 이장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이민정책은 그 현장에 권한을 주지 않는다. 지방은 언제나 집행기관일 뿐이다. 시행령을 전달받고, 예산을 소진할 뿐이다. 지방은 설계자가 아니다. 나는 여기에 가장 거대한 착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주사회의 실체는 지방에 있는데, 정책의 권력은 중앙에 있다는 모순. 광역비자는 이 모순을 뒤집을 마지막 기회다. 왜냐하면, 광역비자는 '추천권'이라는 권한을 지자체에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광역비자를 받으려면 그 지역 광역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이는 행정기술이 아니다. 공동체가 새로운 시민을 선택할 수 있는 최초의 장치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이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통제'가 아니라 '위임'이다.
중앙정부는 이제 이주사회의 설계를 지방으로 넘겨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법적 권한 이전. 외국인 체류자격 추천, 정주계획 수립, 공동체 기반 이민정책 설계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입법적 권한 보장. 예산 자율권 확보. 중앙예산 보조금 구조를 넘어서 이주 관련 특별회계 설치 및 지방조례 기반 운영. 둘째, 정주 생태계 설계 권한 이양. 주거, 교육, 돌봄, 노동, 언어, 문화통합 등 삶의 총체적 조건을 결정할 권한을 지방에 분산. 현재는 교육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가 각각 다른 이주민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파편화된 권한을 지방이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광역비자 기본법' 제정. 광역비자를 단순한 행정 훈령이 아니라 법률 기반의 지역 주도형 이민정책 플랫폼으로 승격. 이는 단순한 법적 지위의 변화가 아니라, 이민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중앙이 틀을 만들고 지방이 따르는 구조에서, 지방이 상상하고 중앙이 지원하는 구조로의 전환이다. 국가와 지방 간의 이러한 권한 재조정은 단순한 행정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와 연결된다.
민주주의는 결국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그들의 미래를 함께 결정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중앙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중앙정부는 비자를 발급할 수 있지만, 정주를 발급할 수는 없다. 정주는 땅과 사람과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 셋을 가장 가까이 가진 곳이 지방이다. 지방이 이주정책의 중심이 될 때, 우리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 농촌형 이주모델, 산업단지형 정착모델, 도시형 공존모델... 백 개의 지방이 있다면, 백 개의 이주사회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주사회를 누구에게 설계하게 할 것인가? 나는 주저 없이 말한다. 그 설계자는 경북 봉화의 마을이장일 수도 있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사람 됨됨이'가 대한민국의 이민정책을 결정하는 날이 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민정책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나는 바란다. 중앙정부가 지방을 믿고, 권한을 내려놓기를. 지방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용기를 갖기를. 이주민이 그저 관리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주체로 인정받기를.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정주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방소멸 위기, 인구절벽 시대에 이민정책은 더 이상 국경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문제다. 그 설계의 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지역주민이어야 한다. 그들의 손에 이주사회의 열쇠를 쥐어줄 때다.
류형철 (Ryu, Hyung-C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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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지역계획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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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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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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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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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