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제11화 우리는 왜 여전히 외국인을 두려워하는가


수십 번 들었다. "외국인 때문에 우리 동네가 무너졌어요." "요즘은 동네가 너무 시끄러워요." "그 사람들끼리만 뭉쳐서 무서워요." 이런 말들 속에는 숫자가 없다. 자료도, 통계도 없다. 그러나 그 말에는 무거운 감정이 있다. 불쾌함, 두려움, 불안, 그리고 설명할 수 없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결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정책은 이 감정을 다루지 않는다. 정책은 언제나 팩트만을 말한다. "이주민 범죄율은 내국인보다 낮습니다."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증가했습니다." "다문화 가정 학생 수가 몇 퍼센트입니다." 그러나 이 차가운 수치들은 뜨거운 감정을 설득하지 못한다. 감정은 논리를 뚫고 나가고, 서사는 통계를 무력화시킨다.

 

우리는 지금 '두려움의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 외국인만이 아니라, 낯선 것, 다른 것, 바뀐 것에 대한 전방위적 공포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국인 혐오가 아니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변화에 직면했을 때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는 근본적 구조의 반영이다. 경북의 작은 읍에서 한 어르신의 말을 들었다. "그 사람들은 친절한데, 왜인지 불안해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친절한데, 불안하다.' 이것은 '타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감정'이 만든 문제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감정의 거처를 아직 만들지 못했다. 그 결과, 이주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주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미분화된 감정 덩어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사회는 이 감정을 다루지 못하는가? 첫째, 단일민족 신화의 후유증이다. "우리는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이야기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무의식적 정체성의 토대를 형성했다. 함께 살아온 역사적 경험이 없으니,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의 감정적 문법도 없다. 둘째, 계량 가능한 행정의 편향이다. 행정은 숫자를 다루고 통계를 만들지만, 감정은 기록할 수 없고 수치화할 수 없으므로 언제나 '보류'되고 '삭제'된다. 행정은 슬픔과 분노를 문서화할 수 없다. 셋째, 갈등을 조정하지 않는 공동체 문화다. 우리는 여전히 '갈등은 조용히 지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침묵의 층위로 내려가 감정의 침전물이 된다. 나는 제안한다. 이제 광역비자는 숫자와 제도 위에 감정의 인프라를 얹어야 한다. 그것은 외국인을 위한 정주 지원센터가 아니라 '감정 해석소'와 같은 공공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주민이 자신의 불안을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구조, 지역사회의 감정자산을 계량화하려는 실험, 이주자와 주민이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일상적 접촉면의 확장이 필요하다. 나는 통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계는 늘 지연되어 도착한다. 우리는 먼저 감정이 폭발한 자리에 뒤늦게 숫자를 들이민다. 그건 구조가 아니다. 그건 사후처리일 뿐이다. 광역비자가 진정한 정주사회 제도라면 '누가 언제부터 살았는가'만이 아니라 '누가 누구를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가'를 기록하는 방식까지도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혐오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혐오는 이념이 아니라 감정의 오염이다. 감정은 '설득'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다. 해석하지 않은 감정은, 정책의 골조를 무너뜨리는 보이지 않는 지뢰가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감정을 다루는 정치다. 이는 정서적 복지를 통계에 포함시키는 것, 지역사회의 불안지수를 측정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나는 꿈꾼다. 정주를 신청한 외국인이 면접을 보듯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주민은 그 사람의 말투, 표정, 손의 주름을 읽는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는 말한다. "같이 살아봐요." 그 순간, 정책은 감정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이 공동체의 진짜 헌법이 된다. 이는 시골 마을의 연쇄적 감정의 반응을 살피는 일이다. 낯섦에 대한 최초의 두려움, 그 두려움이 분노로 변하는 과정, 분노가 절망으로 번역되는 순간, 그리고 언젠가 그 감정이 호기심으로, 관심으로, 어쩌면 존중으로 발전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왜 여전히 외국인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아직 우리 안의 감정을 직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역비자란, 결국 타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최초의 감정 훈련인지도 모른다. 새 정부는 이민정책을 수립하면서, 이 감정의 구조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 통계와 숫자만으로는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불안과 불편함, 그리고 타인을 향한 호기심과 공감까지도 정책의 일부로 포함시켜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정주사회의 시작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류형철 박사 사이트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