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제10화 '정주'라는 단어는 누구의 것이었는가


정주(定住). 한자로는 '머무를 정, 살 주'. 사전적 의미로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두 글자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얼마나 공허한 행정용어로 전락했는가. '정주 지원사업', '정주 인프라 확충', '정주 환경 개선'... 관청의 문서들은 정주라는 글자로 넘쳐나지만, 그 안에는 단 한 명의 살아 숨쉬는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묻고 싶다. "정주는 본래 누구의 것이었는가?" 이 말을 떠올릴 때, 우리는 과연 그 땅에서 자라고 있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는가? 아니면 그저 '주택 보급률', '교육 인프라 지수', '근린생활시설 수'라는 차가운 숫자들을 떠올리는가? 전자의 정주는 사람의 것이고, 후자의 정주는 문서의 것이다. 둘 사이의 간극은 하늘과 땅만큼 넓다. 이주자들에게 정주는 결코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축적이다.

 

어느 가을날, 처음으로 한국 마트에서 고향의 향신료 고수를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처음 받아 온 크레파스 상자를 들고 뛰어들어오던 날의 기쁨. 좁은 컨테이너 집 앞마당에 작은 화분을 놓고 고향의 씨앗을 심었던 어느 봄날의 설렘. 그리고 어느 평범한 오후, 문득 "아, 여기에서 살아도 괜찮겠구나"라고 느꼈던 그 미묘한 안도감. 정주는 바로 그런 순간들의 누적이다. 행정이 줄 수 없는, 오직 삶의 흐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억들의 지도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주를 비자 기한, 거주지 등록증, 취업허가증이라는 종이 한 장으로 정의해왔다. "체류기간 3년 연장." 그 문장 안에 그의 수천 개의 하루가 담겨 있는가? "거소신고 완료." 그 도장 하나가 그가 이 땅에 심은 뿌리를 증명할 수 있는가? 광역비자가 말하려는 정주는 단순한 체류가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이 지역에 새긴 흔적을 인정하는 일이어야 한다.

 

나는 제안한다. 광역비자 제도에서 정주는 다음 세 가지 요소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첫째, 시간이다. 하지만 단순히 얼마나 오래 있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질적인 시간을 그 공간에서 보냈는가를 묻는 시간이다. 둘째, 관계다. 단지 주소지가 아니라, 지역사회 속에서 어떤 인간적 연결을 만들어냈는가를 묻는 관계다. 셋째, 기여다. 세금 납부액이 아니라, 공동체 유지에 자신의 삶의 어떤 자산을 남겼는가를 묻는 기여다. 나는 '봉화, K-베트남밸리'를 구상하던 중 정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한 베트남 이주여성이 "이 골목을 내 아이가 뛰어다녀요"라고 말했을 때, 그 한 문장은 주민등록번호보다 훨씬 강력한 정주 증명서였다. 그녀의 말에는 미래가 있었다. 그 미래를 행정은 볼 수 없다. 오직 삶만이 볼 수 있다. 정주란 곧 '기억의 권리'다. 내가 여기에 살아 있었음을, 내가 여기에 흔적을 남겼음을, 누군가가 알아봐 주는 권리. 이주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 권리를 단 한 줄의 비자 항목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다.

 

법무부 컴퓨터의 한 줄 코드로는 이주자의 삶을 저장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광역비자가 정주를 진정으로 포용하려면, 반드시 '기억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시스템의 재구성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기억하고 인정하는 지역 공동체의 재창조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주민 정책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나는 바란다. 정주라는 말이 다시 사람에게 돌아가기를. 정주가 행정의 언어가 아니라 이주자의 삶의 언어가 되기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비자 종류나 체류자격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주자의 기억을 존중하는 정책이다. 아마도 백년 전, 노신이 살았던 시대의 중국도 비슷했을 것이다. 관청의 도장은 있었으나 사람의 숨결은 없었던 시대. 문서는 넘쳐났으나 인간은 사라진 시대. 노신은 그 시대를 비웃었다.

 

나도 오늘날 우리의 '정주'라는 이름의 행정을 비웃는다. 이주자의 눈물과 웃음이 담기지 않은 정주는 죽은 글자에 불과하다. 인구절벽에 직면한 대한민국, 지방소멸이라는 위기 앞에서 우리는 다시 정주를 묻는다. 그것은 체류자격이 아니라 삶의 자격이어야 한다. 그들이 여기에 심은 기억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정주가 시작될 것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류형철 박사 사이트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