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우리는 누구를 기반으로 했는가
사람들이 말한다. "이주민 통합정책이 필요하다." "다문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 "이주민 아이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강화하자." 그 말들 속에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 그 의도는, 누가 누구를 기준으로 삼는가?라는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 나는 수년간 그 정책자료들을 읽었다. 통합정책, 다문화가족지원법, 외국인정책 기본계획... 수백 페이지의 정책 안에는 빠지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정착', '교육', '사회 적응', '문화 차이', 그리고 '갈등 예방'. 이 모든 단어의 주어는 '그들'이다. 그들이 정착해야 하고, 그들이 배워야 하고, 그들이 적응해야 하고, 그들이 갈등을 일으킬 수 있으니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들'이 항상 '적응의 대상'인가? 왜 '우리'는 늘 '기준'이고, '그들'은 '조정 대상'인가? 이것이 이주민 통합 담론이 가진, 가장 무서운 위선이다. '우리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그 안에 들어 있다.
나는 경북 영천에서 만난 한 고려인 여성의 말을 기억한다. "한국에 왔지만, 내 가족은 여전히 구경거리입니다." 그녀는 자녀의 급식에서 '김치가 맵다'는 이유로 매번 선생님에게 불려 다녔다.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낮 시간 공장에서 조퇴하고 학교로 갔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들의 기준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우리는 지금 '통합'이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그 말은 본래 두 개 이상의 존재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상호작용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이주민 통합'은 한 쪽만 변하고, 한 쪽은 고정된 상태로 남는 비대칭적 구조를 말한다. 그건 통합이 아니라, 조율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류 질서에의 순응'이다.
나는 지방의 이주사회가 이 틀을 넘어서야 한다고 믿는다. 지방은 단지 서울의 축소판이 아니다. 지방이 통합을 말할 때, 그 통합은 '대한민국 기준의 축소적 적용'이어서는 안 된다. 지방의 통합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 질서는, 지역민과 이주민이 함께 기준을 다시 만드는 실험이다. 이때 광역비자의 존재는 결정적이다. 광역비자는 이주민이 지방에 정착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비자의 핵심은 "당신은 이 지역의 기준을 함께 만드는 사람"이라는 선언이다. 이는 서울에 사는 외국인과는 전혀 다른 지위다. 수도권에서의 외국인은 '경제기여자'로 존중받지만, '공동체 구성원'으로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다르다. 나는 봉화군의 작은 베트남 마을에서 본 '공동체 부엌'을 기억한다. 토요일 오후, 마을회관 앞에 한-베 가정의 부인들이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만들었다. 노인들도 함께 앉아, 김치를 가르치고 베트남식 채소절임을 배웠다. 그날, 어떤 주민은 말했다. "나는 65년 살면서 처음으로 다른 나라 음식을 같이 만들어봤소." 그것이 바로 통합이다.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드는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이 모든 실험을 '지역 특성 고려'라는 애매한 문장 뒤에 감춘다. 실제 기준은 언제나 서울이고, 지역은 '예외적이고 낙후된 변두리'로 다뤄진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진짜 기준은 지방에 있다. 진짜 사회 실험은 수도권이 아니라 소멸 위기의 골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광역비자가 도입되면, 지역은 이제 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 "그 공동체의 규칙은 누구의 언어로 쓸 것인가?" 그 질문이 나올 때, 비로소 '통합'은 이주민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의 과제가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말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기준으로 삼았는가?" 그리고 이제부터는 묻는다. "우리는 누구와 기준을 다시 만들 것인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 반드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주류문화라는 단일한 기준을 이주민에게 강요해왔다. 그러나 진정한 통합은 모든 구성원이 함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갈 때 시작된다. 지방이 소멸을 넘어 부활하려면, 이전의 낡은 기준이 아닌 새로운 공존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광역비자가 열어갈 진정한 통합의 길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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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지역계획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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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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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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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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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