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제5화 체류 말기에서 공동체가 시작된다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경북의 한 농촌. 비닐하우스 옆의 임시 거처, 좁은 컨테이너 안에 아이 셋을 키우는 부부. 남편은 불법체류자였다. 아내는 비자 기한이 끝났고, 막내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이 나라의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의 이름은 '김유진'이었다. 어머니가 한국 이름으로 지었다. 하지만 학교는 그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서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겐 출생증명서가 없었고, 부모에겐 체류자격이 없었다.

 

나는 그날 한 가지를 똑똑히 깨달았다. "이 나라는, 종이 없으면 사람도 없다고 여긴다." 불법체류자. 이 단어는 너무 쉽게 말해진다. 그러나 이 말은 문법적으로 틀렸다. '체류'는 행위이고, '불법'은 규정이다. 그 둘을 붙이면, 사람 전체가 불법이 된다. 법은 사람을 규정해야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법의 잉여가 되었다. 그는 살아 있고, 일하고 있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지만, 그는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묻고 싶다. "불법체류가 끝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가 자진출국하면 끝인가? 강제추방되면 끝인가? 아니다. 그가 이 땅에 삶을 남기고 간 이상, 그는 여전히 이 사회의 일부다.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사회는 그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방은 지금, 불법체류자 없는 마을을 상상할 수 없다. 농장, 요양병원, 식당, 건설현장... 그 자리는 비자가 없는 사람이 채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노동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마을의 생태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다. 나는 광역비자 구상 속에서, 바로 이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비자가 없지만 정주하고 있는 사람들. 합법은 아니지만, 공동체는 이미 그를 이웃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광역비자는 말한다. "체류가 끝나는 곳에서도 공동체는 시작될 수 있다." 그건 '사면'도 아니고, '합법화'도 아니다. 그건 인정이다. 당신이 살아온 이 시간을, 이 지역에서 함께 살아낸 이 흔적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인다는 작은 선언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이 선언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말하고 싶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불법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냥, 우리보다 먼저 여기에 도착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 문장이 정책이 되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다시는 공동체를 말할 자격이 없다. 서류는 사람이 되지 않지만, 사람이 서류를 바꿀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광역비자가, 바로 이 '경계선의 사람들'을 위한 제도여야 한다고 믿는다. 국경을 넘는 사람보다, 경계에 머무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계는, 공동체의 경계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단순한 출입국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한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류 있는 사람'만을 인정했다. 그러나 삶은 서류보다 더 복잡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터에 가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이웃과 대화하는 그 모든 시간이 서류 한 장보다 더 무거워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지금 인구소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것은 모순이다. 인구가 필요하면서도, 살고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 그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광역비자는 이 모순을 넘어서는 실험이다. 그것은 말한다. "당신이 여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이 여기에 속한다는 증명이 될 수 있다." 이 말이 법의 언어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체류가 끝나는 곳에서 공동체가 시작된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법의 종이가 없어도, 사람의 존재는 계속된다. 그리고 그 존재가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류형철 박사 사이트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