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제2화 머물기인가, 체류하기인가


 

그는 이곳에 있다. 일을 한다. 세금을 낸다.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의 사람이 아니다. 이 나라의 법은 그를 그렇게 불러주지 않는다. 그는 체류자다. 머무는 자. 잠시 들른 자.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자. 국가가 그에게 부여한 이름이다.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숨겨진 명령문을 본 듯했다. "너는 이 땅에 정들지 마라." "너는 이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다." "너는 떠날 것이다." 한국은 수많은 외국인에게 거주의 사실은 허락하면서, 거주의 권리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 차이를 나는 20년간 연구하고, 현장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 차이는 언젠가 비극의 구조가 된다. 2024년 봄, 영천의 고려인 마을. 그곳은 이미 하나의 '이주공동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어머니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간다. 남편은 일터로, 아내는 시장으로 간다. 하루가 흐르고, 계절이 바뀐다. 하지만 이 공동체는 하나의 허구 위에 서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내, 그들의 어머니, 즉 'F-1-9R 비자'를 가진 가족들은 '일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안 돼요. 그래서 떠나요. 그냥, 다 접고 갑니다."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의 장성우 소장이 말하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은 '모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모국은 이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제도는 냉정했고, 노동시장은 좁았다. 가족은 분열됐고, 어떤 이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더 나아서가 아니다.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상황을 '정책 실패'라 부르고 싶지 않다. 그것은 너무 기술적인 말이다. 이것은 윤리적 실패이고, 공동체의 구조적 무관심이다. 한 사람은 일할 수 있고, 그의 아내는 일할 수 없다. 그의 자식은 학교에 다니지만, 그의 가정은 해체된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체류 중심 이민정책의 실상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외국인 정책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폭력적 언어로 작용한다는 것을 느껴왔다. "단순노무 허용" "체류자격 외 활동불허" "가족동반 제한" 이 모든 문장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너를 일꾼으로는 받아들이지만, 사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법은 외국인을 노동력으로 환영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는 배제하고 있다. 그것이 '체류'와 '거주'의 차이다. 체류는 법률 행위다. 거주는 사회적 행위고, 인간적 선택이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는, 법률은 허용하고, 인간은 부정하고 있다. 나는 광역비자를 만들며 이 질문을 던졌다. "사람은 언제부터 이곳의 주민이 되는가?" 그가 3년을 살았을 때인가? 5년을 살고 자녀를 낳았을 때인가? 아니면 우리가 '당신은 이제 이곳 사람입니다'라고 마음을 허락해 줄 때인가? 광역비자는 단지 지역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그것은 중앙이 "당신은 체류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구조를 넘어서, 지방이 "당신은 여기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의 전복, 정치의 재구성이다.

 

나는 생각한다. 진짜 비극은, 사람이 이곳에 살아도 된다는 말을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도, 그의 가족에게도, 그의 아이에게도, 그 말은 주어지지 않았다. 지방소멸은 통계로 오는 게 아니다. 그건 삶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제 말해야 한다. "당신은 이곳에 살아도 됩니다." "당신의 가족도, 당신의 삶도, 이곳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 한 문장이 비자보다, 제도보다 강하다. 그 한 문장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인구정책도 증발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광역비자에서 시작된 이 작은 언어 실험을, 대한민국의 '정착 선언'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것이 체류에서 거주로, 거주에서 공동체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말이 사람을 만들고, 법이 인간을 규정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말이고, 새로운 법이다. 이것이 광역비자의 진짜 의미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류형철 박사 사이트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