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고향을 선택한 사람들
나는 한 외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이었다. 한국에 온 지 7년, 처음에는 경기도 화성의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했다. 그 뒤 경북 영천으로 내려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수도권을 떠났습니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살 만하더라고요." 그 짧은 문장은 내 사고를 흔들었다. 지방은 살 만한 곳인가? 아니, 우리에게 '살 만하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집값? 일자리? 학군? 교통? 우리는 너무 오래 이 기준들 속에 살며, 정작 '살다'라는 말이 어디서, 누구와, 어떤 관계로 사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임을 잊었다. 그는 영천에 뿌리를 내렸다. 아내와 함께 왔다. 딸은 중학교에 다녔고, 아들은 한국어를 배웠다. 이웃은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두 해쯤 지나자 "그 집은 착하더라"는 말이 돌았다. 그러자 동네는 그 가족을 받아들였다. 그는 고향을 선택한 것이었다. 국가가 고향을 정해주지 않았고, 정치가 안내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 생애에서, 한 장소를 '살 집'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체류 중'이었고, 아내는 '취업 불허'였으며, 아이들은 공교육 시스템에 편입되었지만, 그 누구도 "당신은 여기의 주민입니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의 삶은 정주였지만, 그의 지위는 체류였다. 그는 이 땅에 살고 있었지만, 이 나라에 속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묻는다. 정착은 언제 시작되는가? 제도는 언제 그것을 인정하는가? 사람은 언제부터 '이곳 사람'이 되는가? 고려인 마을, 베트남 마을, 캄보디아 공동체, 필리핀 가정, 우즈벡 청년들... 그들은 이미 스스로 고향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들의 선택을 서류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나라는 아직 살고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다. 나는 광역비자 제도의 핵심이 여기 있다고 본다. 그것은 '지역이 외국인을 데려오는 비자'가 아니다. 이미 여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비자'다. 그들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구조. 그들의 '살고 있음'을 사회가 법으로 승인하는 구조. 그것이 광역비자가 열어야 할 길이다. 우리는 이제 국가에게 묻기 시작해야 한다. "왜 그들의 선택을 당신이 부정하는가?" 이 칼럼의 제목은 '우리는 누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이다. 그 말 속에는 "그들이 먼저 우리를 선택했는데도"라는 침묵이 숨어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침묵을 해독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우리를 선택했으니, 이제 우리가 당신을 받아들이겠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지방의 반란'이다.
수도권을 떠난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고향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들은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삶의 감각으로 정착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들에게 '이웃'이라는 이름조차 주지 않았다. 고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고향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그들에게 '방문객'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모순이 아닐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살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가 새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는 일. 고향을 선택한 이들에게 '여기 사람'이라는 이름을 돌려주는 일. 언어는 현실을 만든다. '체류자'가 아닌 '주민'이라는 말, '외국인'이 아닌 '이웃'이라는 말이 필요하다. 그 말이 그들의 존재를 바꾼다. 영천의 그 고려인은 말했다. "여기가 살 만하더라고요." 그 말 뒤에는 "여기가 내 고향이 될 수 있겠습니다"라는 침묵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침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체류 중'이다. 삶은 여기 있는데, 이름은 여기 없는 사람들. 광역비자는 그들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노력이다. 그러나 비자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인식, 우리의 언어, 우리의 마음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류형철 (Ryu, Hyung-C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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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지역계획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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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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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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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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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