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제3화 비자에도 계급이 있다


그날 나는, 같은 민족의 얼굴을 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다. 한 명은 F-4, 다른 한 명은 F-4-R. 표면상 둘 다 '재외동포 비자'라 불린다. 하지만 정작 그 둘 사이엔 삶의 자격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문지방이 놓여 있었다. F-4 비자는 재외동포에게 주어진다. 대한민국 밖에서 살았던 우리 핏줄. 하지만 이 비자는 단순노무직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은 자격은 있지만, 손을 더럽혀선 안 된다. 말하자면, 일하되, 특정한 방식으로만 일하라는 비자다. 한편, F-4-R. 지역특화형 비자다. 국가는 일부 '인구감소지역'에게 이 특별한 권한을 부여했다. "해당 지역에 사는 외국국적동포에게, 단순노무 포함 모든 취업을 허락하겠다." 그러나 이 비자는 단서가 붙는다. "그 대신, 그 사람은 지역에만 있어야 한다." 그는 노동의 권리를 갖지만, 이동의 자유를 빼앗긴다. 나는 이 구조를 비자의 봉건제도라 부른다. 조선시대 양반이 말을 타고, 상민은 걸어서 가던 시대처럼. 지금 한국의 이주정책에도 사람을 나누는 계급의 언어가 존재한다.

 

F-4는 능력의 이름으로, F-4-R은 지방의 구인난이라는 사유로, 모두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현실은 정반대다. 나는 영천에서 F-4-R 소지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말했다. "일은 할 수 있지만, 시외로 나가는 순간 불법이 됩니다." 그 문장은 이동과 정주의 권리가 거래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허락받은 존재였지만, 허락받은 '장소' 안에서만 유효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지정이다. 자기 삶을 선택하는 권리가 아니라, 배정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의 비극이다. 그런데 F-4와 F-4-R 모두, 법무부는 '우대 비자'라고 부른다. 우대란 말 속에 역설이 숨어 있다. 당신을 우대한다. 그러나 일정 조건 아래에서만. 그러나 당신의 아내는 제외된다. 당신의 자녀는 보조적이다. 당신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제한된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우대란, 통제의 다른 말일 수 있다. 이 비자 구조 속에서, 국가는 사람을 관리 가능한 단위로 바꾼다. 그들에게 이름이 아닌 유형이 주어진다. F-1, F-2, F-4, F-4-R, H-2... 그 이름은 행정적이지만, 삶은 행정이 아니다. F-4-R 소지자의 자녀는 학교에 다닌다. 그가 앓으면 동네 병원에 간다. 동네 약사는 그를 기억한다. 그러나 법은 그를 '임시'로 간주한다. 그것이 비자의 계급이다.

 

지방은 지금 F-4-R을 기다린다. 그들이 와서 농촌을, 공장을, 요양시설을 메워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방이 기다리는 건 노동력이지, 사람은 아니다. 사람을 기다리려면,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삶을 허락해야 한다. 광역비자는 이 계급구조에 균열을 내는 실험이다. 지역이 사람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비자의 이름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름으로 부여된다. 나는 광역비자가 비자에 계급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최초의 제도라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을 유형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 대신 지역은 말한다. "우리는 이 사람을 우리의 이웃이라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제도는 아직 허술하고, 현실은 더 냉혹하다. 행정은 익숙한 범주 안에서 움직이고, 법은 함부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정치의 자리를 문장으로 메워야 한다. 그 첫 문장이 이거다. "비자에도 계급이 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을 나누고, 이름이 아니라 코드로 분류하게 될 것이다. 그 코드 속에서 사는 사람은 결국, 이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

 

래서 나는 묻는다. 우리는 언제쯤 비자가 아닌 이름으로, 유형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으로 사람을 부르게 될 것인가? 그 날이 올 때, 광역비자는 더 이상 비자가 아니라 삶의 자격증이 될 것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류형철 박사 사이트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