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중요한건, 여전히 과정이다.


요즘은 누가 “열심히 해요”라고 말하면 괜히 위축된다. 칭찬처럼 들려야 하는 말인데, 듣는 순간 어딘가 어깨가 무거워진다. ‘내가 지금 충분히 안 하고 있나’, ‘조금 더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예전에는 그 말이 응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숙제가 되었다. 열심히 한다는 건 이제 목표가 아니라 압박이 되었다. 특히 요즘처럼 결과가 모든 걸 결정하는 사회에선 더 그렇다. 아무리 애써도,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면 애쓴 것조차 지워진다. 그렇게 열심이라는 말은 점점 고립된 감정이 된다.

 

예전엔 열심히 한다는 말에 자부심이 있었다.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고, 과정 자체가 의미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결과가 모든 것을 정의하고, 과정은 “그러니까 뭐가 됐는데?”라는 말 앞에서 무력해진다. 노력은 입증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열심히 했어요’라는 말은 이제 변명이 되고,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는 말은 오히려 게으름처럼 취급된다. 그건 시대가 바뀐 게 아니라, 믿음의 구조가 무너진 결과다. 이제는 누구도 과정만으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열심히 한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쓴다. 그 말이 통과 의례처럼 여겨지는 조직 안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회사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언제까지나 결과를 가져오는 사람만 남는다. 학교는 노력의 가능성을 말하지만, 결국 숫자와 등수로 판단한다.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는 건 중요하지만, 그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왜 그렇게까지 했어”라는 냉소만 남는다. 열심은 증명되지 않으면 통과되지 않는 시대. 그래서 사람들은 피로하다. 최선을 다한 사람이 더 지치는 사회에서, 열심은 점점 침묵의 감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열심히 한다. 반복되는 피로 속에서도 다시 시작한다. 그건 생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존엄 때문이다. 열심은 더 이상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무너지게 두지 않기 위한 태도가 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명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감정의 결이다. 그래서 열심히 한다는 말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여전히 포기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되지 않았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존감이 있다. 결과로만 정의되지 않는 시간들, 그 시간 속에 내가 있다는 감각. 그것은 성취가 아닌 생존의 언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열심히 해요”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어떤 무게로 들리는지, 그 무게를 나는 조금은 알게 되었다. 대신 요즘은 이런 말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버티는 것도 대단한 거예요.” “그렇게 해온 것만으로도 꽤 멀리 온 거예요.” 이 말들은 결과를 묻지 않는다. 지금의 감정을 인정하고, 과정의 시간을 존중한다. 그게 나에게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었다는 걸 알아봐 주는 말. 그 말은 지시가 아니라 동행이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열심’의 순간들을 지나갈 것이다. 어떤 건 실패로 끝나고, 어떤 건 애써도 아무도 몰라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열심히 하라’고 말하기보다,

그가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보고 싶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결과는 나중에 나타나도. 그 태도만큼은 어떤 말보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