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선물을 오래 간직하려면
연극이 끝나면 마음은 꽃밭이다. 관객들이 전해준 꽃다발로 침대 머리맡을 꾸며놓고, 꽃들이 시들기 전까지 딱 일주일 동안, 내 방도 꽃밭이다. 공연 후의 행복감과 꽃향기에 취해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듯 달콤하고도 몽롱한 시간은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다.
나는 행복한 연극배우다. 어쩌다 보니 마을에서 모집하는 시민연극동아리 <주부연극교실>에 참가하면서부터 활동한 것이 올해 18년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한 번만이라도 무대에서 연극을 해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무대에 서게 될 줄은 꿈도 못 꾸었다.
어쩌면 꿈을 이룬 셈이다. 대부분은 소극장에서 올리는 단편 공연들이지만, 작품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내 모습에 나름 뿌듯함을 느낀다. 게다가 때마다 꼭꼭 찾아와주는 지인들과 팬들의 박수 소리와 꽃다발의 향기는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나만의 행복이다.
처음 몇 년은 함께 공연하는 팀원들도 다 같이 경험도 없이 시작한 아마추어들이었기에 연기도 서툴렀고, 공연하는 내내 우왕좌왕 실수투성이였고,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도 내 공연 소식을 그리 즐거워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마지못해 오는 남편의 태도가 참 서운했었다. 아마 그때 아이들도 공연 후에 먹는 짜장면이 좋아서 왔을지도 모른다.
“너무 잘하더라. 우리 엄마가 제일 멋있었어.”
“어쩌면 그 많은 대사를 다 외웠어? 대단해 최고야.”
비록 재미가 덜하고 연기가 서툴렀어도 가족, 친구들과 살갑게 웃음을 주고받는 다른 배우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었다.
반면 우리 가족들은 공연 후에 로비에서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언제 밥 먹으러 갈 수 있어”라고 물었고, 함께 사진 찍는 것도 귀찮아했다. 게다가 그 시절엔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때라 공연 후에 꽃다발 가격이 부담스러웠는지 남편은 늘 빈손으로 왔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아이들과 짜장면 먹는 게 더 실속 있다며 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배우들이 받는 꽃다발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몇 년 후에 우리 팀은 경기도 아마추어연극대회에서 대상을, 또 개인상으로 내가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나름 꽤 큰 상이었는지 신문사에서 기자가 찾아와 인터뷰도 하고 지역신문 일면에 사진과 함께 수상 소식이 자랑스럽게 실렸었다. 우리 팀은 모두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속상했다. 그때만큼은 꽃다발을 받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는데도 그런 내 마음을 몰라줬기 때문이다.
“꽃다발이 뭐가 중요해? 대신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먹자”
물론 그런 알뜰함이 좋았지만, 그 서운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상처로 남았나 보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처방전을 마련했다. 조화를 사서 내가 받을 꽃다발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공연 날 아침에 남편에게 들고 오라고 전해주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은 나를 위한 조화 꽃다발을 만들면서 자급자족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꽃다발 선물을 들고 오기 시작했고, 이젠 다른 기념일에도 꽃다발 선물을 아낌없이 주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조화 꽃다발을 만들지 않는다. 이젠 다른 배우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꽃다발 선물이 많아졌다. 게다가 이제는 공연이 재미있고 연기도 훌륭하다는 진심 어린 칭찬까지 받는 행복한 배우가 되었다.
꽃값이 비싸다 보니 충분히 공감된다. 그러기에 꽃 선물을 대하는 마음도 경건해지는 것 같다. 처음 3일 동안은 꽃향기를 듬뿍 느낄 수 있도록 포장지와 꽃을 분리해서 정리한 후 꽃병에 꽂아놓는다. 그 후, 2~3일 동안은 물에 잠겨있던 가지가 불어 썩어 버리기 전에 꽃병에서 꺼내어 가지의 물기를 휴지로 닦고 바닥에 늘어놓아 말린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엔 마른 꽃들을 다시 예쁘게 바구니에 담아 장식한다. 이렇게 꽃을 관리하다 보면 공연 날 느꼈던 기쁨과 희열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공연을 보러 와준 사람들의 미소 띤 얼굴도 떠올라 그 감사한 마음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 같다.
남편의 말처럼 꽃 선물은 형편껏 하면 된다. 무리하게 비싼 꽃다발을 사야 할 필요를 모른 체 꽃값이 아깝다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생에 한 번뿐일 수도 있는 축하의 날엔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마음을 담뿍 담은 꽃다발을 주고받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축하의 의미가 담긴 꽃들과 함께하는 일주일은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해 그 순간이 계속되는 것처럼 자꾸 떠오르게 하는 마법이 있다.
일주일간의 행복값으로 쓰기에는 이런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꽃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주요활동]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