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소식은 삶의 과속방지턱 같습니다
한창 바쁜 시간인 오전 9시 17분, 책상 위 놓인 핸드폰에 진동이 옵니다. 알림창에 떴다가 사라지는 메시지를 보니 부고 문자입니다. 조문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확인하고, 함께 갈 수 있는 지인을 물색합니다. 직장 인트라넷에는 또 다른 부고를 알리는 팝업창이 떠 있습니다. 이상하지요? 계절이 바뀔 때 세상을 떠나시는 분들이 많은데 특히 겨울철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유명한 배우분들의 슬픈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TV나 영화로만 만나던 분들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봐 오던 분들이라 그들에게 내적 친밀감이 있었나 봅니다. 마치 가까운 지인의 사망 소식처럼 마음이 울적하고 쓸쓸했습니다. 좀 더 기다리다 꽃피는 계절에 떠나도 좋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해서 추운 계절에 떠났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하늘을 바라봅니다.
세상에 알려진 이들의 부고 소식이 전해질 때면, 뉴스에서는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이룬 업적들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줍니다. 텔레비전에 비치지 않는 보통 사람의 경우 비록 그런 추모 영상은 없지만, 유명인 못지않게 삶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며 살았을 겁니다. 저의 부모님이 그랬고, 제 이웃이 그랬던 것처럼요.
고단하고 무정했던 삶과 살아오며 조금씩 이루어 낸 귀한 가치를, 살아계실 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신 후 가족과 이웃을 통해 살아온 나날들을 조명하고 되돌아보니, 지난한 삶의 고귀함에 고개가 숙어집니다. 저도 세상을 떠날 때는 제 삶의 결을 알아주는 이가 몇몇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부고 소식은 삶의 과속방지턱 같습니다.
새삼 인간에게는 주어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성실하게 삶의 가치를 실현하며 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존엄하게 퇴장하고 싶습니다.
톨스토이는 노년에 소설 작품보다 명상을 통한 짧은 글을 많이 썼습니다. 그 가운데 ‘삶이 선하다면 죽음 역시 선하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너무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그저 살면서 죽음을 삶과 너무 분리하지만 않는다면 저절로 삶은 진지하고 즐거울 거라고 그는 말합니다.
더 이상 부고 소식에 너무 우울하지 않기로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공부 중이라고 해석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해가 뜬 하늘에는 아직 지지 못한 희끗한 달이 보입니다. 희미하게 사라지는 달을 보며 나에게서 멀어져간 이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 봅니다. 그리고 조용히 맺히는 눈물로 그들과의 재회를 기다려봅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