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새해의 태도는 조용하게 결정된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란 늘 묘하다. 달력 한 장만 넘겼을 뿐인데도, 왠지 인생의 방향 전체가 바뀔 수 있을 것만 같고, 과거의 실수도 새하얀 리셋 버튼을 누른 듯 무효화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스며든다. 그러나 삶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초기화되는 것이 아니다.

결심은 때때로 좋지만, 태도는 단순한 다짐으로 바뀌지 않고, 현실과의 마찰 속에서만 조금씩 조정된다. 그래서 새해는 거창한 목표보다 조용한 태도를 다시 정비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변화는 선언이 아니라 지속이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다시’라는 말에서 위안을 얻고, 누군가는 ‘이번엔 잘해보자’는 주문을 반복한다. 하지만 사람은 해가 바뀌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의욕은 새로워도 습관은 끈질기고, 기대는 커졌지만 일상의 관성은 어제 그대로다. 그래서 더 필요한 건 ‘의지’보다 ‘이해’다. 내가 왜 늘 같은 지점에서 주저앉는지, 무엇을 놓치면 불안해하는지, 어떤 종류의 강박에 길들어 살아왔는지를 바라보는 일. 새로운 한 해는 자꾸 무언가를 더하려 애쓰기보다는, ‘덜어내도 괜찮다’는 자기 수용의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올해는 진짜 잘 살아야 해.” 많은 이들이 새해 앞에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문장에 조심스럽게 다른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올해는 그렇게까지 잘 살지 않아도 괜찮아.” 이 말은 나태하거나 무기력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자책해온 사람에게 주는 해방의 문장이다. 우리는 종종 자기 삶을 끝없는 프로젝트처럼 관리한다. 더 나은 성과, 더 좋은 몸, 더 깊은 관계를 추구하며, ‘지금 이대로’는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완벽을 추구할수록 삶은 불안해지고, 작은 흐트러짐에도 자책은 커진다. 그런 방식으로 살기에는,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을 지쳐왔다. 올해는 자신에게 조금 더 느긋한 관용을 허락해도 된다. 그것이 게으름이 아닌, 성숙의 징후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 있어야 타인을 배려할 수 있다. 자기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타인의 감정에도 공감할 수 있다. 결국 대부분의 갈등은 자기 내면과의 싸움에서 비롯된다. 확신 없는 사람은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타인의 기쁨에도 괜한 경쟁심을 품는다. 그러니 새해의 시작은 외부의 소음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먼저 듣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떤 방향이 나에게 편안한지, 어떤 속도가 나를 덜 다치게 하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묻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진짜 ‘계획’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비교하지 않고 시작하는 용기다.

어떤 사람은 벌써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자격증을 준비하며 일상을 재정비한다. 누군가는 SNS에 해돋이 사진과 함께 다짐을 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이불 속에 하루를 묻는다.

모두 괜찮다. 속도가 다르고, 출발선이 다르고,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다름을 ‘뒤처짐’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변화의 본질은 남보다 빨리 가는 데 있지 않고, 내 삶에 꼭 맞는 방향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 있다.

누군가는 올해,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도 삶의 태도다. 무언가를 새로 해야만 의미 있는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멈춰 서서 들여다보는 것, 이전 해에 묻었던 감정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삶을 바꾸는 중요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결국 한 해를 바꾸는 건 각오가 아니라 반복이다. 매일의 소소한 선택이 결국 큰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이 우리의 삶을 이끈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고 해서 망한 하루가 아니고, 계획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다. 중요한 건 다음 날 다시 해보는 것이다.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으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것. 바로 그 반복이 올해의 태도를 만든다. 변화는 그런 조용한 반복 속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이렇게 시작해도 좋다.

“잘 살아야지”가 아니라 “편안하게 살아보자.”

더 강해지기보다 더 단단해지고, 더 완벽해지기보다 더 유연해지고, 더 인정받기보다 더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해가 되기를.

그 문장이 당신을 덜 불안하게 만들기를, 그리고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가게 해주기를 바란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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