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한마디 - 소통하는 가족의 온도 "여보야, 맛있게 잘 먹었어, 고마워요." 여러분은 식사 후 이런 말을 자주 하시나요? 우리는 식탁 앞에서 감사합니다. 농부가 땀 흘린 노고를, 가족을 위해 애쓴 가장에게, 정성껏 밥상을 차린 주부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감사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간의 대화 방식은 부모의 영향, 가정 분위기, 성격 차이 등 여러 요인에 기인하며, 특히 형제자매 간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도 감사 표현이 익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그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더욱 나은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설 명절에 형님댁에서 모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여보야, 잘 먹었어, 고마워요!"라는 명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시숙님께서 밥상 인사로 화답하십니다. 그 얼굴에는 마치 젖먹이의 충만함,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었어요. 반사적으로 저는 남편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나, 같은 형제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담?” 그의 표정은 시숙님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저는 "밥 잘
Off the hook – 위기를 모면한다 낚싯바늘에서 운 좋게 빠져나온 물고기처럼, 우리도 가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때가 있습니다. 깜빡 잠이 들어 친구와 한 약속 시간을 놓쳐버렸는데 친구가 먼저 남겨놓은 취소 문자를 발견했을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출근길 교통체증이 심해서 발을 동동 굴리다가 우회도로를 발견해서 쉽게 빠져나왔을 때도 있을지요?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아마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겁니다. 명절 음식 할 생각을 하니 벌써 몸이 천근만근인데, 시어머니께서 미리 다 준비해 놓았으니 천천히 오라 하시면 어떨까요?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말할 수 있는 안도의 영어 표현을 오늘 알려드리려고 해요. <Off the hook>이라는 표현은 “낚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옛날부터 낚시할 때, 사람들은 낚싯대 끝에 바늘 <hook>을 달았어요. 거기에 미끼를 끼워서 물고기를 유인하지요.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날카로운 낚싯바늘에 걸리게 되고 도망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때때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낚싯바늘에서 빠져나와, 다시 자유롭게 물속으로 도망치는 일도 있습니다. 그날 저녁
설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법 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예상보다 큰 피로감을 느낀다.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있었던 만큼, 다시 기존의 패턴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흔히 ‘명절 후유증’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비일상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명절이 주는 분위기는 평소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설 연휴 동안 우리는 평소보다 더 많은 자극을 받는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장시간 머물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며, 평소보다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수면 패턴이 흐트러지는 일이 잦다. 명절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마치 휴가 후의 피로감처럼 몸과 마음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을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신체와 심리가 변화를 받아들이고 조정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완벽한 복귀보다 작은 루틴부터 설 연휴가 끝난 후 일상 복귀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생활
집마다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파리 고택의 우편함에 "당신의 집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넣은 작가가 있다. 그는 '빛이 이끄는 곳으로'의 박희성 작가이자 건축가이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고택들을 골라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제 인터뷰했다. 건축가로서 집 구조와 디자인 등 건축물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 있는 추억담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만일 당신의 우편함에서 이런 편지를 발견한다면 과연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뉴욕의 가파른 계단 상가 이층집. 70년 된 기찻길 옆 집이 떠올랐다. 고등학생이 될 아들을 위해 학군 좋은 부동산을 들렀다. 나온 것이 없단다. 1년 후 오란다. 1년 후에도 없다는 대답에 앞이 캄캄했다. 더는 물러설 수 없어 1년 전에 의뢰했고, 이 동네 지인의 추천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그제서야 전화번호 달랑 적어놓고 가란다. 미국에서는 이민자가 원하는 학군을 찾아 집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일명 좋은 학군에는 아무나 오는 것을 원치 않기에 부동산에서부터 고객 정보가 철저히 관리되기 때문이다. 뜨내기에
Run out of steam – 체력이 고갈되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 겨울 방학 숙제로 ‘기차에 관한 책’을 받아왔습니다. 그냥 책이 아니라, 개학 후 ‘북퀴즈’를 대비하기 위한 책이었어요. 방학 동안 엄마와 책을 열심히 읽어오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는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제게 책을 읽어달라 졸랐댔지요. 북퀴즈에서 1등 트로피를 받겠다며 말입니다. 똑같은 책을 매일 반복해서 읽어주는 게 너무나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아이와 가끔 꺼내 보며 웃을 수 있는 소중한 추억거리가 되었어요. 덩달아, 저야말로 정말 ‘기차 도사’가 되었답니다. 혹시 여러분은 증기 기관차가 무언지 알고 계시나요? 19세기에 사람들은 증기 기관차로 여행을 다녔답니다. 자동차와 전기 열차가 등장하기 전이었지요. 휘발유와 전기가 아닌 증기로 나아가는 기차였습니다. 석탄을 용광로에 넣고 태우면서 물을 끓였고, 그 물이 증기로 바뀌며 엄청난 압력과 에너지를 냈습니다. 하얀 증기<steam>를 구름처럼 내뿜으며 달리는‘증기 기관차’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만약 기차에 석탄과 물이 다 떨어지면 어찌 되었을까요? 더 이상 증기를 만들어 낼 수 없었고, 증
새로운 설날, 우리의 설을 되묻다 설날은 여전히 우리의 가장 큰 명절이지만, 그 풍경과 의미는 시간이 흐르며 많이 변하고 있다. 어린 시절 설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가족들이 한데 모여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웃음소리와 함께 차례를 올리던 장면은 누구나 간직한 명절의 단면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설은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고향 대신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가족 모임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변화는 전통의 퇴보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춘 자연스러운 진화일까? 설날, 달라진 풍경의 의미 설날은 한 해를 시작하며 가족, 친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의 모습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고향으로의 귀성’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날을 즐기고 있다. 해외여행을 선택하는 가족, 명절 특수를 노린 호텔 패키지를 예약하는 젊은 세대, 혹은 한적한 집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까지, 설날의 모습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명절의 전통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은 현
외할머니의 도마 덜컥 가게부터 얻어놓고 몇 달째 비워 두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17년째 해오던 지역 예술 활동을 그만두려는데, 마무리만 벌써 6개월째다. 공방은 도마를 다듬고 이름이나 로고, 기념 문구 등을 프린팅해서 판매할 수 있다. 지인들은 언제 오픈하냐고 난리인데 정작 주인인 난 천하태평이다. 한두 달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그동안 바지런 떨며, 나름대로 자부심도 컸다. 그런데 막상 내려놓자니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진짜로 몇 주간은 꼼짝 못 하게 생겼다. 새해는 밝았고 명절은 다가온다. 핸드폰은 내 속도 모르고 새해 인사와 덕담 메시지를 열심히 배달한다. 예전 같으면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담으려 정성껏 답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기필코 쉬어 가리라 마음먹었으니 대충 넘겼다. 그러다 문득 오랜만에 동창에게 온 메시지를 보았다. 중학교 시절 늘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였다. 몇 달 전, 통화하면서 내가 공방을 운영할 계획으로 가게를 얻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친구는 그걸 기억하고 명절 선물용으로 도마 다섯 세트를 주문했다. 고맙고 기분 좋았다. 반가운 마음에 당장 친구에게 전화해 신나게 수다
공감받으며 살고 계시나요? 자신을 잘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공감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죠. 세상에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더 많으니까요. 서로 공감하며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삶을 살고 계시나요? 우리는 힘들 때, 소통을 더 간절하게 원하지요. 그런데요, 진짜 힘들 때는 소통이 어려워요. 그 순간은 나만의 생각에 빠져 마음도 불안하고 그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잘 없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벽이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상대는 나의 처지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할머니께서 유치원생 앉혀 놓고, 살아온 인생을 털어놓으며 위로해달라고 매달리고 있는 느낌과 비슷하겠지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에게 “아~삶이 힘들게 느껴진다”했더니 친구가 자기는 아직 힘든 감정을 잘 못 느껴봐서 공감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 후로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 그 이야기를 다시 언급했을 때, 자신이 그랬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했지요. 많이 힘들고 지칠 때, 그 상황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죠. 스스로 듣고 싶은 말을 자신에게 많이 들려주며 위로해 보면 좋겠어요. 우리는 삶에서 크고 작은 고통을 느껴요.
[대한민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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