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좋은 사람이 되는 데도 비용이 든다


 

좋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가만히 계산해보면 그렇다. 결혼한다는 소식에는 축의금을 챙기고, 상을 당했다는 연락에는 부의금을 준비한다. 생일이면 작은 선물이라도 고르고, 입학이나 졸업, 승진처럼 기쁜 일이 생기면 빈말로 축하하고 지나가기가 어렵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싶고, 기분이 가라앉은 친구에게는 맛있는 것을 먹이거나 바람이라도 쐬게 해주고 싶어진다.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든 갚아야 마음이 편하고,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미안해”라는 말만 던져놓고 끝내기도 영 개운하지 않다. 밥을 사든 작은 선물을 건네든, 말 뒤에 무언가를 하나 더 얹어야 비로소 마음을 다한 것 같다.

 

돈만 드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누가 언제 아팠는지, 누구의 아이가 시험을 보는지, 어느 집에 좋은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시간도 써야 한다. 전화 한 통이면 될 일을 굳이 찾아가기도 하고, 바쁜 날에도 잠깐 얼굴을 비추고, 선물을 하나 사더라도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고른다. 택배 하나를 보내는 데도 주소를 묻고 주문하고 메시지를 적는 수고가 따라붙는다. 마음만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좋은 마음을 실제 삶에서 좋은 행동으로 옮기려면 돈과 시간과 수고가 든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음을 쓴다’는 표현은 꽤 정확한 말인지도 모른다. 마음도 쓰면 닳고, 마음을 표현하려면 현실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물론 돈을 많이 쓴다고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비싼 선물이 깊은 마음을 보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금액보다 마음이 물성을 얻는 과정에 있다. 누군가를 생각했다는 사실이 전화 한 통이 되고, 한 끼의 밥이 되고, 꽃 한 다발이 되고, 먼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 된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행동은 남는다. 우리는 그 행동을 통해 상대가 자신에게 얼마를 썼는지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기꺼이 내어놓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사람은 의외로 선물의 가격보다 자신을 생각한 흔적에 오래 감동한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을 기억해 골라온 작은 물건 하나가 값비싼 선물보다 마음에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관계란 결국 이런 작은 비용들이 오가는 곳이다. 한쪽에서는 시간을 내고, 다른 쪽에서는 수고를 들이고, 어떤 날에는 돈을 쓰고, 또 어떤 날에는 감정을 쓴다.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올 필요는 없다. 내가 밥을 샀으니 너도 밥을 사야 하고, 내가 네 생일을 챙겼으니 너도 내 생일을 챙겨야 한다는 식이라면 관계는 금세 장부가 된다. 좋은 관계에는 정확한 정산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내어놓고 있다는 감각이다. 한 사람만 계속 쓰고 다른 사람은 계속 받는 관계에서는 결국 돈보다 마음이 먼저 바닥난다.

 

좋은 사람일수록 이 사실을 늦게 알아차린다. 애초에 받을 생각으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서 했고, 걱정돼서 했고, 내가 해주고 싶어서 했다. 그러니 서운해하는 것조차 자신의 호의를 훼손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좋아서 해놓고 뭘 바라나” 하며 스스로를 타이른다. 그러나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과 관계의 상호성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사람은 자신이 준 것과 똑같은 것을 돌려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상대에게도 자신을 향한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플 때 한 번쯤 먼저 묻는 사람, 내가 힘들 때 시간을 내는 사람, 내 기쁜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사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산이 아니라 마음의 왕복이다.

 

그 왕복이 사라지면 좋은 사람으로 사는 비용은 갑자기 비싸진다. 예전에는 기꺼이 썼던 돈이 아까워지고, 시간을 내는 일이 버거워지고, 먼저 연락하는 손가락이 멈춘다. 돈이 아까워진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의가 감사가 아니라 당연함으로 돌아오고, 배려가 어느새 내 역할이 되어버리면 사람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야 해서 피곤해진다. 관계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은 누가 얼마를 냈느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만 계속 지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시작된다.

 

그렇다고 좋은 사람이 되지 말자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세상이 각박하니 내 것부터 챙기고, 받은 만큼만 돌려주며 살자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경조사를 챙기는 사람이 좋고, 힘든 친구에게 밥 한 끼 사주는 사람이 좋다. 미안하다는 말에 행동을 보태는 사람,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 누군가의 좋은 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이 쓰는 돈과 시간과 수고 덕분에 관계는 단단해지고 세상은 조금 덜 삭막해진다.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영리함이라면, 때로는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사람의 품격일 수도 있다.

 

다만 이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아무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구분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싶다. 마음에도 예산이 있기 때문이다. 돈에만 한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에도 한도가 있고, 관심에도 한도가 있으며, 사람을 챙길 수 있는 마음의 여력에도 분명 한도가 있다. 그것을 무시한 채 모두에게 같은 정성을 쓰다 보면 정작 소중한 사람에게 쓸 마음까지 남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는 있어도 누구에게나 헌신할 필요는 없다. 관계에도 우선순위가 필요하고, 마음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오래 살고 싶다면 오히려 내 마음의 지출을 가끔 들여다봐야 한다. 이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인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 오래된 습관 때문에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쓰는 마음을 귀하게 받아주는 사람인지도 봐야 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을 고르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내어놓은 마음을 당연하게 소비하지 않는 사람을 알아보라는 뜻이다. 고마움을 아는 사람에게 쓴 마음은 이상하게 덜 아깝다. 때로는 더 쓰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많이 아는 것보다 누구에게 마음을 쓸 것인지 아는 일이 중요해진다. 모든 경조사를 다 챙길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의 기분을 풀어줄 수도 없으며, 모든 관계에 같은 정성을 쏟으며 살 수도 없다. 젊을 때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마음을 많이 쓰는 법을 배웠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마음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것은 인색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가치를 아는 일이다.

 

좋은 사람으로 사는 데는 분명 비용이 든다.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수고도 들고, 때로는 서운함까지 치러야 한다. 나는 그 비용을 아끼며 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기쁜 날을 축하하고, 힘든 날에는 곁에 있고, 미안하면 말보다 조금 더 움직이고, 고마우면 표현하며 사는 편이 여전히 좋다.

 

다만 이제는 아무에게나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는 않다. 마음은 무한하지 않고, 좋은 마음이라고 해서 함부로 써도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마음을 귀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도 포함한다.

 

돈에는 예산을 세우면서 마음에는 예산을 세우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돈을 잃었을 때보다 마음을 너무 많이 쓰고 난 뒤 더 크게 지친다.

 

좋은 사람으로 오래 살고 싶다면, 마음도 잘 써야 한다.

 

아끼라는 뜻이 아니다.

 

쓸 만한 사람에게 제대로 쓰라는 뜻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저서]

상처의 밀도 (2026) -에듀래더글로벌-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