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라 연공서열 중심의 호봉제를 직무 가치 중심의 직무급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그러나 현장의 도입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다. 대다수 노동조합은 직무급제 도입을 사실상의 임금 삭감이나 구조조정의 전단계로 받아들이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진이 기억해야 할 점은 직무급제 도입의 성패가 화려한 성과 지표나 정교한 직무 설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 간의 불신을 걷어내는 ‘소통의 기술’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직무급제 도입의 패러다임은 제도의 일방적인 강제와 지침 이행에서,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상생의 거버넌스’로 전면 전환되어야 한다.
갈등을 최소화하는 성공적인 안착은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객관적인 직무가치 평가’에서 출발한다. 경영진은 직무급제 도입이 총인건비를 깎기 위한 경영상의 꼼수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합리적 조직으로의 체질 개선임을 데이터로 증명해야 한다. 설계 초기 단계부터 노동조합과 ‘직무분석 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하여 각 직무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완성된 설계 안을 들고 와 노동조합에 수용만을 압박하는 방식은 갈등을 파국으로 몰고 가며, 법원에서 요구하는 합리적 노사 합의의 절차성을 결여하는 결정적 실책이 된다.
이 과정에서 마주하는 또 다른 난제는 조직 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하향식 소통과 유인책(Incentive)의 전략적 배치’다. 직무급제 도입은 기존 호봉제 체제에서 기득권을 가진 고연차 근로자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던 저연차 근로자 간의 노노(勞勞) 갈등을 유발하기 쉽다. 경영진은 구성원 간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임금 저하자가 발생하지 않는 ‘보전 수당’을 유연하게 설계하거나, 직무 전환 교육 기회를 대폭 확대하는 등 감수해야 할 변화에 상응하는 안전장치를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노조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명분을 주는 정교한 설득 프로세스야말로 소통의 핵심이다.
이에 더해 기관의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이라는 ‘상위 가치를 공유하는 책임 있는 대화 체계’가 튼튼하게 받쳐주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어 공공서비스가 저하되거나 마비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며 이는 결국 노사 모두에게 사회적 비난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경영진은 정부 지침과 예산의 한계를 솔직하게 공유하며 노조를 경영의 동반자로 인정해야 하고, 노동조합 역시 무조건적인 수용 거부 대신 기관의 미래 경쟁력을 고려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노사가 함께 공공의 이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인식할 때 비로소 타협의 문이 열린다.
이 모든 노력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제도의 완결성이 아닌 수용성의 확보’다. 컨설팅을 통해 도출된 아무리 훌륭한 임금 모델이라도 구성원이 이해하지 못하고 노조가 거부한다면 그 제도는 서류철 속의 죽은 문서에 불과하다. 현명한 경영자라면 이제 정부의 평가 지표를 맞추기 위한 속도전에서 벗어나, 당장 노조 대표와 마주 앉아 무엇이 불안한지 경청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노사가 충분한 소통을 통해 합의해 낸 직무급제만이 조직의 체질을 바꾸고,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김천수 대표 노무사 (제일인사노무법인)
○ 제2회 공인노무사 시험합격 (1989)
○ 연세대 법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 (법학석사)
○ 서울시립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 (법학박사)
○ 대법원 법원행정처 전문관 역임
○ 국민권익위원회 전문상담위원 역임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고위지도자과정(30기)
○ 국무총리 표창(2003)
○ 저서 「노사협상 전략과 쟁점」 외 다수
○ 다수 공,사기업 및 노동조합 노무 고문
[대한민국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