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감흥이 없다는 감각도 취향이다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종종 정답이 먼저 도착한다. 누군가 잔에 코를 가까이 대고 복숭아와 흰 꽃, 젖은 돌의 향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다시 향을 맡아본다. 그러나 내게는 그가 말한 향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전혀 다른 향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것도 선명하게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가장 먼저 의심하는 것은 와인이 아니라 나의 감각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은 생각보다 꺼내기 어렵다. 다른 향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 와인을 오래 마신 사람의 확신에 찬 설명 앞에서 나의 감각은 금세 근거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가 복숭아라고 했으니 내가 맡은 자두는 틀린 것 같고, 모두가 복합적이라고 감탄하니 밋밋하다고 느낀 내 인상은 미숙한 감상이 된 듯하다. 결국 잔 속에서 무슨 향이 나는지를 살피기보다 남들이 말한 향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게 된다.

 

물론 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품종과 산지, 양조 방식에 관한 지식은 막연했던 감각에 이름을 붙여주고 이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차이를 발견하게 한다.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전문가의 안목 역시 존중할 가치가 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누군가는 발견할 수 있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대상이 공부와 경험을 거친 뒤 다르게 느껴지는 일도 있다. 하지만 배운다는 것과 정답에 자신을 맞추는 것은 다르다. 지식은 감각의 범위를 넓혀주는 언어여야지, 각자의 느낌을 채점하는 답안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은 와인 잔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훌륭하다고 말한 식당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면 음식보다 자신의 입맛을 먼저 의심한다. 유명한 작품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자신에게 예술을 이해할 만한 안목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여러 사람이 인생 영화라고 말한 작품을 보고도 지루했다면 솔직한 감상을 말하기보다 내가 놓친 의미부터 찾아본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과 타인의 평가가 다를 때, 타인의 평가보다 자신의 감각을 먼저 틀린 것으로 만든다.

 

별점과 리뷰가 일상이 된 시대에는 경험보다 평가를 먼저 만나는 경우가 많다. 식당에 가기 전에는 반드시 먹어야 할 메뉴와 감탄해야 할 접시를 알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가장 아름답다는 풍경을 미리 본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명장면과 해석을 접한다.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어느 정도 배운 뒤 경험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피기보다 이미 들은 평가가 옳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한다. 감상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평가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 되어간다.

 

타인의 평가가 자신의 느낌과 다를 때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는 태도는 필요하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매력이 있을 수 있고, 그날의 몸 상태나 기분이 감각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과 자신의 감각을 부정하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새로운 향을 발견했다면 감각이 확장된 것이지만,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그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순간의 솔직한 감각 역시 지워야 할 오답은 아니다.

 

감흥은 대상 안에 완성된 채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대상과 지금의 내가 만나는 순간에 비로소 생겨난다. 지난번에는 매력적이었던 와인이 오늘은 무겁게 느껴질 수 있고, 여행지에서 황홀했던 음식이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평범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좋은 작품과 나의 마음이 언제나 같은 시간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대상의 가치와 나의 감흥은 얼마든지 서로 다른 자리에 존재할 수 있다. 내가 감동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대상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대상이 훌륭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감동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취향을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와인을 즐기고, 어느 식당을 선호하며, 어떤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는지를 통해 취향을 설명한다. 그러나 취향은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는 능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감탄하는 것 앞에서 아무런 감흥이 없을 때, 그 무감흥까지 자신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취향은 선명해진다.

 

누군가 복숭아 향을 말한 순간 내게 자두 향이 느껴졌다면, 그날 나의 잔에는 자두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향을 찾아도 선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모른다고 말하면 된다. 타인의 설명을 경청하되 내가 실제로 느낀 것을 서둘러 철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취향을 가진 사람의 태도다. 감각은 배움을 통해 넓어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따라 좋아하는 데에는 취향이 필요하지 않다. 취향은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스스로 믿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저서]

상처의 밀도 (2026) -에듀래더글로벌-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