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다시 일어날 때 필요한 것은 의욕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너진 뒤 다시 일어서려면 마음부터 살아나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 의욕이 생겨야 하고, 다시 해보고 싶어져야 하고, 다시 좋아져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기다린다. 더 나아진 기분, 다시 생길 의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올 열정을. 그러나 실제 삶은 그 순서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것은 대개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생활의 복구다. 의욕이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일상의 틀이 먼저 제자리를 찾으면서 마음이 뒤따라온다.

 

무너진 사람은 흔히 자기 감정부터 의심한다. 예전처럼 하고 싶지 않고, 전처럼 빨리 움직여지지 않고, 아주 작은 일조차 버겁게 느껴지면 자신이 약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리듬이다. 한 번 무너진 뒤의 삶은 대개 마음보다 생활이 먼저 흐트러진다. 잠드는 시간이 뒤섞이고, 식사의 감각이 무뎌지고, 해야 할 일의 순서가 흐려지고, 하루가 하루를 밀어내는 식으로 지나간다. 이런 상태에서는 좋은 말도, 큰 결심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마음은 여전히 지쳐 있는데 생활의 바닥까지 꺼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은 의외로 거창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은 질서를 먼저 세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한 끼를 챙기고, 미뤄둔 연락 하나를 정리하고, 오늘 할 일을 하나만 끝내는 식이다. 겉보기엔 사소해 보이지만, 사람이 무너진 뒤 가장 먼저 잃는 것이 바로 이런 기본적인 질서다. 그리고 삶은 대개 여기서부터 다시 붙는다. 큰 희망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반복이 사람을 겨우 살아 있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한다. 다시 일어서려면 예전처럼 뜨거워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다시 꿈꿔야 하고, 다시 설레야 하고, 다시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너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더 작은 단위다. 인생 전체를 복구하려 하지 않고 오늘 하루만 버텨보기, 완전히 괜찮아지려 하지 않고 더 나빠지지 않게 하루를 정리해보기,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지금의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생활을 다시 짜보기. 사람은 큰 목표 앞에서는 쉽게 무너지지만, 작은 리듬 앞에서는 생각보다 오래 버틴다.

 

다시 일어나는 일은 대개 아름답지 않다. 영화처럼 어떤 깨달음이 오고, 책처럼 어느 날 새 사람이 되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루하고 반복적이다. 별 감흥도 없는데 해야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데 밥을 먹고, 달라진 것도 없는데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마음은 아직 따라오지 않았는데 생활이 먼저 움직이는 날들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시간을 하찮게 생각하지만, 실은 이 무감한 반복이야말로 회복의 실제에 가깝다. 감정은 종종 뒤늦게 도착한다. 살아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먼저 세워진 생활의 틀이다.

 

그래서 무너진 사람 앞에서 “힘내라”는 말은 자주 빗나간다. 힘을 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힘은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어떤 시기의 사람은 희망보다 습관으로 버티고, 의욕보다 규칙으로 버틴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식사를 하는 순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 누워 있는 시간을 끝없이 늘리지 않는 최소한의 기준. 이런 것들은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다시 자기 삶 쪽으로 끌어당긴다. 다시 일어나는 힘은 생각보다 고상하지 않다. 그것은 종종 자기 자신을 아주 평범하게 돌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생활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 곧 감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다. 감정이 너무 무너져 있기 때문에 생활이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충분히 회복된 뒤에야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는 일이 회복의 일부가 된다. 기운이 나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걷는 일이 기운을 조금씩 데려온다.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나서야 이유가 뒤늦게 따라붙는 날들이 있다. 사람을 다시 살게 만드는 것은 늘 이해된 감정만이 아니다. 때로는 이해보다 먼저 반복된 행동이 사람을 구한다.

 

물론 이 말이 무조건 버티라는 뜻은 아니다. 더 많이 견디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서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최소한의 구조다. 이 최소한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하루 한 끼를 제대로 먹는 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침대에서 나와 창문을 여는 일일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미뤄둔 일 하나를 끝내는 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얼마나 대단하냐가 아니라, 오늘의 내가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느냐이다. 무너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현실적인 단위다.

 

다시 일어날 때 사람에게 필요한 건 의욕이 아니라 감각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면 내가 더 무너지는지, 무엇을 하면 간신히라도 나를 붙잡을 수 있는지 아는 감각. 너무 많은 사람들은 삶이 무너졌을 때 더 큰 각오를 찾는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각오보다 감각이다. 오늘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회복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능력. 그 감각이 있으면 사람은 조금씩 자기 리듬을 다시 세울 수 있다.

 

결국 다시 일어나는 사람은 특별히 강한 사람이 아니다. 무너진 뒤에도 삶의 최소한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완전히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아직 괜찮지 않아도 생활의 바닥부터 다시 복구하는 사람이다. 의욕은 늘 변하고, 감정은 자주 배신하지만, 생활의 질서는 의외로 사람을 오래 지탱한다. 그래서 다시 일어날 때 필요한 것은 뜨거운 결심이 아니다. 오늘을 무너지지 않게 끝낼 작은 질서다.

 

사람은 의욕이 생겨서 다시 사는 것이 아니다.

무너진 뒤에도 삶의 최소한을 놓지 않을 때, 비로소 다시 살아지기 시작한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저서]

상처의 밀도 (2026) -에듀래더글로벌-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