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나이가 들수록 설렘이 늦어지는 이유


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쉽게 설레지 못할까.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설렘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허락의 문턱이 높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젊을 때의 마음은 대개 먼저 움직이고 나중에 계산한다. 사람에게도, 일에게도, 어떤 가능성에게도 그랬다. 좋아 보이면 가까이 갔고, 끌리면 일단 붙잡았다. 그때의 설렘은 대개 무모했지만 그래서 더 빨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마음보다 결과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설레기 전에 지칠 것을 알고, 기대하기 전에 실망의 비용을 계산하고, 시작하기 전에 끝의 표정을 먼저 본다. 그래서 마음은 여전히 움직이는데도, 예전처럼 쉽게 들뜨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변화를 두고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순수하지 못해졌다고, 열정이 식었다고, 현실에 너무 젖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설렘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설렘 뒤에 따라오는 대가를 너무 잘 알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는 감당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여러 번 배웠기 때문이다. 관계에는 감정만큼 타이밍과 거리와 온도가 중요하고, 일에는 재능만큼 생활과 체력과 지속 가능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마음은 예전처럼 쉽게 자신을 밀어 올리지 못한다. 무뎌져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설렘은 사실 무지의 감정에 가깝다. 아직 다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고, 아직 다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커질 수 있다. 잘될 수도 있다는 상상, 혹시 다를 수도 있다는 기대,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결과가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낙관이 있어야 설렘은 자란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은 결국 어떤 식으로 상처를 주는지, 어떤 약속은 얼마나 자주 어긋나는지, 어떤 기회는 얼마나 쉽게 사람을 소진시키는지, 어떤 희망은 결국 피지 못한 채 돌아오는지. 경험은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즉각적인 설렘의 토양을 걷어간다.

 

그래서 어른의 마음은 자주 조용하다. 좋아하는 것이 생겨도 티를 내기 전에 망설이고, 가능성이 보여도 먼저 물러날 이유를 찾는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마음이 커질수록 감당해야 할 것도 커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설렘은 이제 가벼운 감정이 아니라, 책임의 예고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좋아하면 마음뿐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와 기대까지 함께 움직여야 하고, 일을 좋아하면 생활 전체의 리듬을 다시 조정해야 하고, 어떤 꿈을 품으면 그 꿈이 실패했을 때의 공허까지도 감당해야 한다. 이쯤 되면 설렘은 이제 감정보다 결심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사람은 조심스러워지는 것과 마르는 것을 자주 헷갈린다. 신중해졌을 뿐인데 스스로를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함부로 기대하지 않게 되었을 뿐인데 자기 안의 열정이 끝났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설렘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과 더 이상 아무것도 좋아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태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수록 설렘은 그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전처럼 번쩍하는 감정은 줄어들지 몰라도, 대신 오래 보고도 여전히 좋고, 몇 번의 계산을 거친 뒤에도 포기되지 않고, 현실의 조건을 통과하고도 남아 있는 마음이 생긴다. 젊은 날의 설렘이 불꽃이었다면, 이후의 설렘은 쉽게 꺼지지 않는 불씨에 가깝다.

 

그래서 어른의 설렘은 종종 오해받는다. 겉으로는 덤덤해 보이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함부로 들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더 깊은 설렘은 이런 식으로 남는다. 처음에는 조용하지만 오래 가고, 순간적으로 뜨겁기보다 천천히 생활을 바꾸고, 감정 하나로 폭발하기보다 반복되는 선택으로 증명된다. 설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현실을 모른 척하는 설렘이 아니라, 현실을 알고도 여전히 포기되지 않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더 비싼 설렘인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설레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설렜다가 쉽게 다치던 시절을 지나오며, 무엇에 마음을 내줄 것인지 훨씬 엄격하게 고르게 되었을 뿐이다. 이전보다 덜 들뜨는 대신, 더 오래 책임질 수 있는 감정만 남겨두는 쪽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예전만큼 쉽게 설레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낡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른의 마음은 식은 것이 아니라, 비싸진 것이다. 아무 데나 움직이지 않고, 아무 말에 흔들리지 않고, 아무 가능성에 자신을 걸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다시 쉽게 설레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계산과 경험을 모두 통과한 뒤에도 여전히 마음이 남는 대상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것일지도. 오래 살아남는 설렘은 대개 거기서 시작되니 말이다. 한때의 흥분이 아니라, 여러 번의 의심 끝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마음으로. 그래서 나이가 든 뒤의 설렘은 늦지만 가볍지 않다. 적게 오는 대신, 함부로 오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진실하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저서]

상처의 밀도 (2026 에듀래더글로벌)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