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무너진 건 기대인데, 멈춰버린 건 나였다


무기력은 늘 게으름으로 오해된다. 해야 할 일은 남아 있고, 시간도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먼저 자신을 의심한다. 나태해진 건 아닐까,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닐까,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기대가 무너진 뒤 찾아오는 무기력은 그런 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의지의 실패라기보다, 한동안 앞으로 가던 마음이 갑자기 갈 곳을 잃은 상태에 가깝다.

 

사람은 기대할 때 현재만 살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살아본다. 잘될 거라는 믿음, 달라질 거라는 전망,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가정 속에서 마음은 이미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기대가 무너질 때 사라지는 것은 결과 하나만이 아니다. 그 결과를 중심으로 미리 짜여 있던 내면의 시간, 이미 먼저 가 있던 감정, 조용히 붙들고 있던 방향감각이 함께 무너진다. 상실은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정작 안에서는 오래 붙잡고 있던 하나의 시간이 통째로 꺼져버린 상태다.

 

그래서 기대가 무너진 사람에게 먼저 오는 것은 슬픔이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멈춤이다. 울고불고 무너지는 것보다 더 먼저 찾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밀어 올리지 못하는 상태다. 평소처럼 일어나고, 먹고, 만나고, 필요한 말은 한다. 그런데 안쪽에서는 더 이상 다음을 향해 움직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는데, 왜 해야 하는지는 몸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이때의 무기력은 피로와도 조금 다르다. 피로는 쉬면 풀릴 수 있지만, 기대가 무너진 뒤의 무기력은 쉬어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몸보다 먼저 방향이 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무기력은 자주 오해된다. 밖에서 보면 게으름처럼 보이고, 안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공백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기운을 내야지”,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지”라고 말하지만, 사실 문제는 의지가 없는 데 있지 않다. 의지가 붙을 자리가 비어 있다는 데 있다. 기대가 무너진 사람은 한동안 다시 원하지 못한다. 다시 믿지 못하고, 다시 기대하지 못하고, 다시 힘을 걸지 못한다. 무기력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다시 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더 가깝다.

 

이 점이 중요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은 그렇게 깊게 멈추지 않는다. 한때 충분히 믿었고, 충분히 바랐고, 충분히 마음을 먼저 보내본 사람만이 그렇게 멈춘다. 그러니 어떤 무기력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그 반대로 한때 너무 진심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멈춘 자신만 탓한다. 무너진 것은 기대인데, 멈춰버린 자신만 문제 삼는다. 바로 여기서 무기력은 더 길어진다. 이미 잃은 것 위에 자기 비난까지 얹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무기력을 너무 빨리 회복의 언어로 번역하려 한다는 데 있다. 다시 힘을 내야 한다고, 다시 꿈을 찾아야 한다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대가 무너진 뒤의 사람에게 그런 말은 종종 너무 크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희망이 아니라, 무너진 기대의 자리에 맞는 새로운 크기의 기준이다. 많은 경우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예전과 같은 열정도 아니다. 오히려 더 작아진 기대, 더 짧아진 거리, 더 현실적인 단위가 삶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의욕을 끌어올리는 일이 아니라, 기대의 크기를 줄이는 일에 가깝다. 인생 전체를 다시 세우려 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 모든 것을 복구하려 하지 않고, 당장 해야 할 일 하나만 끝내보는 것. 완전히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더 나빠지지 않게 하루의 리듬을 지키는 것.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조정이다.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줄여보는 일이다.

 

이런 방식은 무기력을 과소평가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무기력을 “이겨내야 할 적”으로 보지 않고, 지금의 삶이 감당할 수 있는 단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로 읽는다. 사람은 늘 큰 희망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시기에는 작고 반복 가능한 기준이 사람을 붙든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한 끼를 챙기고, 약속 하나를 지키고, 미뤄둔 일 하나를 해내는 것. 이런 사소한 질서가 다시 마음을 앞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기대가 무너진 뒤의 무기력 앞에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상태를 너무 빨리 게으름으로 오해하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다시 살아갈 기준을 예전과 같은 크기로 세우지 않는 것이다. 무너진 기대를 그대로 복구하려고 하면 사람은 다시 같은 자리에서 멈춘다. 그러나 기대의 크기를 줄이고 삶의 단위를 다시 조정하면, 무기력은 조금 다른 얼굴로 바뀌기 시작한다. 여전히 가볍지는 않지만, 더는 나를 전부 멈추게 하지는 않는 상태로.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기대가 무너진 뒤 삶이 보이는 정직한 반응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도 의욕의 강요가 아니라,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사람은 거대한 희망이 있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아주 작게 다시 기대하는 법을 배우면서, 비로소 멈춘 자리에서 조금씩 빠져나온다. 무기력은 끝이 아니라, 기대의 크기를 다시 배워야 한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