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 등록 2026.04.02 12: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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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진짜 말을 하지 않을까


모임이 끝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웃는 사람도 많았고, 대화도 끊기지 않았다. 누군가는 농담을 던졌고, 누군가는 맞장구를 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자리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방금까지 꽤 많은 말을 나눴는데,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가 무례했던 것도 아니고, 누가 분위기를 망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적당히 배려했고, 적당히 웃었고, 적당히 맞춰줬다. 그래서 더 매끄러웠다. 그런데 그 매끄러움이 이상하게 남았다. 말은 오갔지만, 누구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느낌.

 

생각해 보면 요즘의 대화는 비슷하다.

말은 많다. 그런데 말이 깊어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불편한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적당한 말을 고른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 말, 분위기를 깨지 않을 말, 오해를 만들지 않을 말. 그래서 대화는 항상 무난하다. 그리고 그 무난함 속에서 진짜 말은 점점 줄어든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은 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말은 생각보다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한 번 꺼낸 말은 기록으로 남고, 기억으로 남고, 때로는 관계를 바꾼다. 아무 뜻 없이 던진 말도 누군가에게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하고 싶은 말보다 해도 되는 말을 먼저 고르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말들은 안전하다. 틀리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들에는 나 자신이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요즘 대화는 이상하다. 우리는 계속 이야기하고 있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솔직하지 않은 게 아니라 솔직해지는 데 드는 비용을 너무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을 줄인다. 그래서 돌려 말한다. 그래서 진짜 말은 삼킨다.

관계는 유지되지만, 그 안에서 사람은 점점 조용해진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왜 우리는 솔직하지 않을까가 아니라, 어디까지는 솔직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으로.

모든 말을 다 꺼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말까지는 꺼낼 수 있어야 한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말을 줄이다 보면 결국 관계 자체가 비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기준이다. 어떤 말은 삼키고, 어떤 말은 끝까지 꺼내는 기준.

그 기준이 없는 관계는 편안해 보일 수는 있어도, 오래 가지는 않는다.

 

결국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많은 말이 아니라 버티고 남은 몇 개의 진짜 말이기 때문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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