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 등록 2025.11.08 00: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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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조용하던 공간에 갑작스레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린 사람들이 목격한 건 부서진 의자와, 그 옆에 넘어져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이었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카페를 빠르게 나섰다.

커피잔은 아직 반 이상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는 창가 쪽이라 햇살이 잘 들었지만,

의자가 유난히 약해 보이는 탓에 많은 이들이 앉으려다 말곤 했다.

하필 거기에 앉은 그녀가 특별히 무리한 움직임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 상황은 오롯이 ‘운이 나빴다’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너진 의자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무너진 듯한 얼굴로

그 공간을 빠르게 벗어났다.

자신이 망가뜨렸다는 죄책감, 그리고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픔의 신호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부끄러움이 감각을 덮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안다.

넘어지고, 흘리고, 부서질 때,

가장 먼저 상처받는 건 자존감이다.

작은 사고일 뿐인데, 그 상황이 나라는 사람 자체를 정의하려는 듯 느껴지는 순간.

아픈 것보다 창피함이 먼저 치고 들어오는 감정의 구조.

도움보다 도망이 먼저 떠오르는 반사적 수치심.

 

그날 그녀가 커피를 마저 마시지 못한 건, 그 자리에 자신을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많은 실수들이 내 잘못이 아니었다.

약한 의자, 미끄러운 바닥, 흔들린 손.

때로는 상황이 원인이었음에도, 우리는 그 실패의 서사를 죄책감이라는 단어로 통째로 끌어안는다. 실수는 ‘행위’인데, 너무 쉽게 그것을 ‘나’라고 착각한다.

‘내가 어쩌다 그랬다’가 아니라,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믿게 되는 그 순간,

수치심은 조용히 우리를 파고든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날의 그 여자처럼,

나도 스스로에게 너무 야박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걸.

말을 더듬었던 날, 너무 크게 웃었던 날,

눈물을 참지 못하고 돌아섰던 날.

그 순간의 나를 떠올리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의 나는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려 애쓰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존엄을 회복하려는 몸의 반사작용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그때는 누구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조차 나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밀어냈고,

‘나답지 않았어’라며 지워버리려 했던 기억들.

그 속엔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나만 너무 쉽게 죄인이 되어버린 감정들이 있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다만 그 실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기억은 달라진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그날의 자신을 미워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품는다.

그건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실수를 마주할 때 조금은 어색하게 외면한다.

말을 건네지 않는 그 침묵 안에는

“나는 알아요”라는 조용한 연대가 있다.

너를 놀리고 싶지 않고, 괜찮냐고 묻는 것조차 어쩌면 상처일까 봐,

그저 조심스럽게 시선을 거두는 것.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공감하는 것이다.

 

실수는 사라져도, 그날의 부끄러움은 잔향처럼 남는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를 떠날 때,

그 뒷모습을 향해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하곤 한다.

 

“괜찮아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그날의 나도, 사실은 조금 더 당당했어야 했던 것 처럼.

당신도, 내가 알아줄게요.”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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