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 등록 2025.08.28 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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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팅만 남은 우정, 피로만 쌓인 감정


우정이 끝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감정을 내뱉거나 다투는 일 없이, 말이 끊기고 연락이 뜸해진다. 어느 날 문득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게 된 두 사람은, ‘끝났다’는 말조차 없이 멀어진다. 하지만 관계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종료되지 않는다. 끝내지는 않으면서 끝난 것처럼 살아가는 이 관계를 우리는 ‘지켜보는 사이’라고 부른다.

 

SNS는 이 모호한 관계의 무대를 제공한다. 더 이상 메시지를 주고받지도 않고, 약속을 잡지도 않지만, 여전히 서로를 팔로우하고 스토리를 확인한다. 댓글은 사라지고, ‘좋아요’도 끊겼지만, 상대의 계정은 목록에 남아 있다. 누군가는 이를 성숙한 거리두기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감정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미뤄진 해소’에 가깝다. 관계를 끝낼 용기는 없고, 이어갈 정성도 없는 상태. 이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애매한 감정들을 피로하게 반복한다.

 

‘좋아요’를 누르지 않은 이유를 고민하게 되고, 스토리를 봤다는 사실이 신호처럼 해석된다. “왜 내 글에는 반응이 없지?”, “그 사람은 여전히 내 편일까?”,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질문은 명확하지 않고, 답은 오지 않는다. 침묵하는 상대 앞에서 해석하고 고심하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다. 그렇게 감정은 조용히 소진된다.

이런 ‘지켜보는 관계’는 특유의 정적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감정 노동을 요구한다. 차라리 완전히 단절되었더라면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피드를 확인하고, 이름을 보며 그 사람과의 과거를 복기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관계의 현재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단절이 불편하고, 차단이 무례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침묵과 관찰을 택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국 상대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스스로의 피로를 외면하는 방식이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를 피할 수 있다는 착각, 거리를 두는 것이 중립이라는 오해가 반복될수록, 관계는 더 무겁고 불편해진다.

관계를 끝낸다는 것은 반드시 싸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감정의 끝을 인정하고, 서로의 삶에서 조용히 물러서는 것도 하나의 예의일 수 있다. 그것은 애매한 기대를 정리하고, 감정의 소모를 줄이는 방식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스러운 마무리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마무리를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SNS는 이 과정을 유예하게 만든다. 연결은 계속되지만, 교류는 없다. 말은 없지만, 피드 속 장면 하나하나를 암묵적인 메시지로 해석하게 된다. 아무 말 없이도 수많은 감정이 생성되고,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간다. 결국 감정은 흐르지 못하고 고인다. 그리고 고인 감정은 피로가 된다.

 

중요한 건, 그 관계가 여전히 나에게 정서적 의미를 가지는가이다. 의미 없는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무책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책임 있는 선택일 수 있다. 침묵으로 서로를 가두기보다는, 조용한 이별을 택할 용기. 그것이 스스로를 덜 소비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된다.

 

우정은 눈치로 유지되는 감정이 아니다. 말을 건네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지켜보기만 하는 사이에 남는 건, 추억이 아니라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다.

 

손을 놓는 것이 반드시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 놓음이야말로, 더 이상 나를 소진시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보호이며, 새로운 감정이 들어설 여백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관계를 끝내는 건 무례가 아니다.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쪽이 오히려 더 무례할 수 있다.

 

더는 해석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감정의 피로를 털어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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