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 등록 2025.07.23 12: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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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의 시대, 배려는 사라졌는가


요즘은 공공장소에서 마주치는 무례함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엘리베이터 문을 막아서는 사람, 이어폰 없이 동영상 소리를 틀어놓는 대중교통의 승객, 복도에서 아이를 방치한 채 고성을 지르는 부모. 누구나 한두 번쯤은 이런 풍경을 지나쳤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게 뭐지’ 하고 한 번쯤 쳐다봤을 장면들이 이제는 눈길도 주지 않을 만큼 일상화되었다. 그럴수록 하나의 질문이 고개를 든다. “우리는 정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걸까.”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도시의 일상은, 배려라는 말 자체를 희미하게 만든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점점 ‘배려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공공의식은 결국 타인을 고려할 줄 아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감각이 점점 퇴화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가 너무 지쳐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들에겐 남을 배려할 여유조차 없다. 숨 돌릴 틈 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시계 속에서 우리는 점점 ‘나’만 챙기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생존에 몰두한 도시에서, 배려는 점점 ‘사치’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태도들이 이제는 ‘기본값’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 하나쯤이야”, “굳이 저 사람을 신경 써야 해?” 하는 식의 무관심이 오히려 현실적이고 쿨한 태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기적인 무관심이 사회의 기본값이 되는 순간, 도시는 공동체가 아니라 단절된 개체들의 집합으로 변질된다. ‘함께’라는 말은 점점 더 공허해지고, 우리는 곁에 있어도 함께 있지 않은 사람들로 남게 된다.

 

배려가 사라진 도시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바로 ‘안전’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타인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경적을 반복해서 울려대는 운전자, 보행자를 도로로 밀어내는 불법 주정차, 몰래 버린 쓰레기 하나. 그 모두가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라는 방심 속에 일어난다. 하지만 그러한 ‘조금씩의 불편’은 매일 누적되어 누군가에게는 큰 위험이 되고, 결국 도시 전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이런 문제를 제도나 캠페인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건 규칙이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다. 법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삶을 지탱하는 건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나의 일상, 나의 감정, 나의 사람들과의 관계로 되돌아온다. 타인을 향한 배려는 결국 나의 삶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더 이상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정상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으로 복원되어야 한다. 타인의 말투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이 아닐지 자문해보는 일.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내 행동이 혹시 누군가를 피곤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한 줄의 생각만으로도 충분하다. 도시의 공기는 그 한 걸음으로 바뀐다.

 

거창한 행동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문을 한 번 더 붙잡아주는 손길, 대중교통에서 전화 통화를 조금만 줄여보는 마음, 담배꽁초 하나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는 행동. 그런 작고 사소한 배려가 쌓여서, 우리가 사는 도시의 결을 바꾼다. 불편한 건 규칙이 아니라, 무례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필요한 건, 모두가 조금씩 덜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려는 누군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선택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완벽하게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성숙해지고 싶은 사람이, 조금 더 나은 도시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시작하는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습관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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