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 등록 2025.06.20 21: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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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정책은 여전히 혼자다


영천에서 들은 이야기다. 고려인동포가 가족을 데려왔다. 지역특화형 비자(F-4-R)로 합법적으로 일하는 그는 희망에 찼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받은 것은 F-1, '동반비자'였다. 취업은 불가능하고, 단순노무조차 '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이민정책이다. 배우자는 데려올 수 있으나, 그 배우자는 일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가족을 데려오라는 말이 아니라, '보호자 없는 체류'를 법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외국인 배우자는 사람이 아니라 '부속품'이다. 노동할 권리도, 독립적 존재로 인정받을 권리도 없다. 마치 청나라 시대 족외인(族外人)처럼, 그저 '붙어 있는 타인'일 뿐이다. 자녀는 또 어떠한가? 학교에 들어갈 권리는 있으나, 행정서류에는 늘 '부모 외국인번호 없음'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건강보험은 취득 제한이 많고, 아프면 병원비가 몇 배로 불어난다. 합법적으로 왔으나, 그들은 정책의 빈칸 속에 존재한다. 그 빈칸은 언제든 "떠나라"는 냉혹한 글자로 채워질 수 있다. 비자가 공동체를 만드는 제도라면, 그 공동체는 가족 단위여야 한다. 정책이 혼자 온 사람만을 상정하는 순간, 그 정책은 이미 실패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현장은 이를 증명한다. 적응하던 이주민이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배우자의 무기력, 자녀의 정서불안, 생활비의 이중부담이다. 그들의 말은 간단하다. "함께 살 수 없는 곳에는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이 한마디가 대한민국 이민정책의 허상을 꿰뚫는다. 가족을 정책에 포함시키지 않는 한, 어떤 비자도 '정착'을 만들 수 없다.

 

나는 제안한다. 광역비자 제도는 '가족권'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배우자에게 조건부 노동 허가를 부여하라. 일정 요건 충족 시, 정주 기여를 인정하고 신분 전환을 허하라. 자녀에게 교육·의료 통합 패키지를 제공하라. 지역사회 통합 모델과 연계한 '정주 권리'를 보장하라. 가족 단위 정착 지원 모델을 시범지역에서 운영하라. 농촌형, 소도시형 등 지역 특성에 맞게 차등 적용하라. 가족은 '따라온 존재'가 아니다. 가족이 있어야 이주자는 뿌리를 내린다. 가족이 존중받아야 지역이 그 사람을 품을 수 있다. 가족 없는 정착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 온 사람만 계산하는 정책은 결코 정주 사회를 만들 수 없다. 광역비자가 가족을 포함할 때, 비로소 그것은 공동체의 형태를 갖춘다. 우리 관료들은 서울 사무실 책상 위에서 통계표만 들여다본다. 그러나 진짜 이민은 영천의 골목길, 밭 사이에서 일어난다.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민정책은 결국 종이에만 존재할 뿐이다. 사람은 사는 곳에서 가족과 함께 웃을 때 비로소 그곳을 '집'이라 부른다. 정책이 이것을 모른다면, 수천 장의 문서와 예산안은 모두 헛된 것이다. 새 정부는 알아야 한다. 인구절벽 시대,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에 이민정책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가족'을 보아야 한다. 그것이 지역을 살리는 첫걸음이다. 가족이 온다면, 지역도 산다. 정책이 가족을 외면한다면, 지역은 죽는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백년 전, 노신(魯迅)은 중국 사회의 아픔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본다면, 무엇을 말할까?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제도는 제도가 아니라 폭력이다." 우리의 이민정책은 지금 그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족을 갈라놓는 정책, 배우자를 독립적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 자녀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그 폭력의 실체다. 이주민 가족의 아이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있어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정책이 그 아이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너희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그것은 초대가 아니라 경고였다. 그 아이의 눈에서 불안을 읽었다. 그 불안은 어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불안이 대한민국의 이민정책이 만든 유산이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민자를 단순한 노동력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가족을 분리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구성 단위로 인정할 것인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가족이 함께하는 이민정책만이 진정한 정착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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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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