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 등록 2025.06.20 2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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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


나는 이 말이 늘 꺼림칙했다. "광역비자요? 법무부 훈령으로 가능해요." 한 고위 공무원이 말했다. 그는 친절했고, 유능했으며,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서, 이 사회가 공동체를 다루는 방식의 한계를 보았다. 훈령은 행정부가 만드는 내부규정이다. 절차는 간단하고 속도는 빠르다. 그러나 훈령에는 공동체의 합의가 없다. 그것은 정치 없이 만들어진 행정의 언어다. 나는 지방의 문제를 훈령으로 다룰 수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지방은 사람의 문제이고, 사람은 제도 이전에 존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광역비자 특별법'을 말한다. 이 비자는 단순한 체류 자격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약속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10개가 넘는 외국인 관련 법이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법도 "이주민이 이 땅에서 정착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고, 머무를 수 있지만 '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법체계는 외국인을 체류자로만 본다. 정주자, 즉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는 보지 않는다. 우리는 그 빈 틈을 훈령으로 메우려 했다. 그러나 훈령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어떤 정권이든 쉽게 지울 수 있다. 그렇기에 광역비자에는 법이 필요하다. 지워지지 않는 문장, 뒤집히지 않는 약속, 지방이 스스로 공동체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 그 모든 것을 담은 법이 필요하다. 나는 묻는다. 왜 서울의 대학은 입학정원까지 법으로 정하면서, 지방의 생존은 훈령 한 줄로 결정하려 하는가? 왜 수도권은 입법을 통해 보장받고, 지방은 시행규칙과 고시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가? 지방이 외국인을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은, 단순한 노동정책이 아니라 국가 재구성의 서사다. 그걸 법 없이 할 수는 없다. 그건 사회적 배반이다.

 

나는 광역비자 특별법이 다음의 내용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고 믿는다. 지방정부가 외국인의 정착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한. 광역비자 발급 권한의 지역 이양. 광역비자 소지자의 정주 지원에 대한 국가의 재정 의무. 정착 공동체와 지역자치 간의 공식 협약 구조. 체류자가 아닌 '주민'으로서의 법적 지위 인정. 법 없이 지역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행정이 해주는 배려는, 다음 정권에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만이 공동체를 안전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법은 이제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지난 20년을 지방의 빈집과 빈 땅에서 살아왔다. 그곳엔 법이 없었다. 행정이 있었고, 제도 틈새의 예외만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훈령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동체의 이름으로 자신을 받아줄 법적 장치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대한민국 국회에 조용히 요청한다. "지금이 바로 특별법을 만들 시간입니다." 이 특별법은 단지 외국인을 위한 법이 아니다. 이 나라도 아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최후의 헌장이다. 행정은 현실을 움직이지만, 법은 현실을 만든다. 지방에는 현실을 새로 만들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자신의 공동체를 스스로 구성할 권리에서 시작된다. 중앙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에서, 지방은 단지 실행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특별법은 권한을 넘겨주는 것이다. 사람을 받아들일 권한, 정주를 허락할 권한, 공동체를 설계할 권한. 그 모든 것을 지방에 돌려주는 법이 필요하다. 지방소멸은 단지 인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한의 문제이고, 결정권의 문제이며, 자율성의 문제다. 광역비자 특별법은 지방에게 '당신이 결정하라'고 말하는 법이다. 그 결정 속에는 누구를 받아들일지,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시작이다. 훈령으로는 역사를 바꿀 수 없다.

 

역사는 법을 통해 바뀐다. 그리고 그 법은 반드시 특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맞이하는 현실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지방소멸이라는 위기 앞에서, 우리는 특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결단이 바로 광역비자 특별법의 제정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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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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