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 등록 2025.06.20 17: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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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뜻밖의 나라


그들은 사라졌다. 아니, 더 냉정히 말하자면 그들은 '없어졌다'. 통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들. 숫자는 점처럼 찍혔다가, 누군가의 무관심 속에 증발해버린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소멸'인가? 아니다. 그것은 방치다. 정책적 방치, 행정적 유기, 사회적 망각이다. 내가 처음 그 비극을 목격한 것은 삼 년 전 인구 흐름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어느 밤이었다. 지도 위 생명들이 꺼지듯 흩어지는 광경은 마치 이 땅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죽음 앞에서 우리가 지껄이는 헛된 변명들이다. "출산율이 낮아서 그렇다." "도시가 더 편해서 그렇다." "지방은 경쟁력이 없어서 그렇다." 허튼소리. 이런 말들은 진실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양심과의 비열한 타협이다. 기억에서 도망치기 위한 구차한 면죄부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잊었다. "우리는 누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렇다.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이곳에 살아도 되는지, 여기서 아이를 낳아도 되는지, 지역을 고향이라 불러도 되는지를 묻지도, 허락하지도 않았다. 마치 권리인 양 그들의 존재 자체를 거부했다.

 

나는 300쪽이 넘는 보고서를 썼다. 표지에는 ‘광역비자 도입 실효적 추진 방안’이라고 쓰여 있지만, 이 문서의 진짜 제목은 따로 있다. "우리가 누구를 국가로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이 질문은 정치적 질문이 아니라 생존의 질문이다. 대한민국의 외국인 정책. 무슨 정책이란 말인가. 10여 개의 법률로 쌓아올린 거대한 성벽이다. 출입국관리법,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국적법, 난민법... 그 외에도 수백 개의 조례와 고시들. 법은 말한다. "3년 체류 가능." "5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 신청." "단, 단순노무는 불가." 이 모든 문장을 짜깁기하면 결국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머무르되, 정 붙이지 마라!" 나는 묻고 싶다. 그것이 정말 법이었는가? 아니면 두려움에서 비롯된 경계였는가? 지방은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공장은 구인난에 허덕이고, 학교는 입학생 제로, 병원은 의사가 없어 응급실도 없다. 그 자리를 외국인이 채우고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임시'로 취급된다.

 

비자는 노동을 허락하지만, 삶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하지만 지역주민이 아니고, 아이를 낳지만 학부모는 아니며, 세금을 내지만 유권자가 아니다. 우리는 묻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 마을에 살아도 되는가?" 그저 관료적으로 묻는다. "출입국관리소에서 허가받았는가?" 이렇게 법이 공동체를 대신했다.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래서 나는 광역비자를 설계했다. 이것은 단순한 비자가 아니다. 이것은 지역이 다시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광역비자는 선택의 비자다. 외국인은 말한다. "나는 경상북도에서 살고 싶다." 그러면 그 지역이 말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보자." 중앙은 그 선택을 인정하고, 비자를 준다. 그 안에는 행정과 정치, 그리고 태고부터 이어온 인간의 윤리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비자를 "통제의 도구"로만 써왔다. 그러나 이제 비자는 "공동체 설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살길이다.

 

지금은 2025년 5월. 대한민국은 새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붕괴했고, 정치의 틀이 다시 짜이고 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말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책이 아니라 철학을. 제도가 아니라 사람을. 비자가 아니라 정주를. 체류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말하겠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이 질문이 이 칼럼 시리즈의 시작이다. 그리고 광역비자라는 혁명이 시작된 이유다. 침묵은 이제 끝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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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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